박병윤 출생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병윤. (~2022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병윤. (~2022년)
대한민국의 만화가, 에니메이션, 영화 감독 김청기.
대한민국의 생물학자, 조류학자 윤무부. (~20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1년 3월 16일 태극기에 조국 독립을 향한 결의를 붓글씨로 적고 서명해, 중국에서 활동하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샤를 메우스)에게 건넴.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를 거쳐 도산 안창호 가족에게 전해졌고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됨. 임시정부 지도자의 친필이 담긴 항일 유산으로,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2021년 보물로 승격됨.
1940년 10월 뉴욕 초연에 이어 미국영화연구소가 정식 배급 개봉일로 기록한 미국 개봉.
최초 공개 연도인 1940년과 AFI 카탈로그의 미국 개봉일인 1941년 3월 7일을 구분하기 위한 기록.
대한민국의 배우 주현.
1941년 릴리 P. 블리스 유증 기금으로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89)을 입수함. 미술관 컬렉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소장품 중 하나가 됨. 설립 후원자의 유증이 어떻게 영구 컬렉션의 핵심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양조장 공사 일자리를 둘러싼 노조 간 분쟁에서 파업·피케팅·불매 권유를 한 조합원들에 대한 셔먼법 기소를 배척한 허치슨 판결. 셔먼법을 클레이턴법 제20조와 노리스-라과디아법의 노동분쟁 보호 규정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해석. 노동조합이 자기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비노동 집단과 결합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통적인 평화적 노동활동을 보호하는 기준의 정리. 노동자의 조직 활동을 기업의 가격담합과 일률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법정 노동면제의 중요한 전환점.
어린 치바 테츠야가 가족과 함께 당시 일본의 지배 아래 있던 만주 봉천(현재 중국 선양)으로 이주함. 1939년 조선반도를 거쳐 이동한 뒤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일본의 패전을 맞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41년 1월 6일 의회 연두교서에서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보편적인 기본적 자유로 제시함.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전후 국제질서의 원칙을 설명했으며, 이후 유엔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등에 영향을 준 인권 담론의 주요 계기로 평가됨. 미국의 전쟁 참전은 같은 해 12월의 별도 사건임.
조선성악연구회가 신작 《옥루몽》을 공연. 《춘향전》과 《심청전》의 반복 상연에 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창극 공연.
뉴욕시가 민간 IRT와 BMT를 인수하면서 기존 시영 IND와 함께 공공 운영 체계로 통합함. 소유·운영 통합은 중요한 전환이었으나 역간 환승과 안내체계까지 즉시 완전히 통일된 것은 아니었음. 이후에도 서로 다른 차량 규격과 노선 계통을 가진 역사적 흔적이 남게 됨.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 후배 정병욱을 만나 우정을 쌓기 시작한 시기. 함께 문학을 읽고 생활을 나누던 관계가 훗날 원고 보존과 유고 시집 출간으로 이어진 과정. 윤동주의 작품이 독자에게 전해지는 데 벗과 가족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만남.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에서 무대에 첫발을 내딛고 연극배우로 활동 시작. 작은 배역과 순회공연을 거치며 무대 경험을 축적
함석헌이 1940년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김혁이 운영하던 송산농사학원을 경영하던 중 계우회사건에 연루됨. 대동경찰서에서 약 1년간 구류 생활을 함. 이후 1942년 『성서조선』 필화사건으로 다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게 되는 일제 말기 탄압의 전조가 된 사건.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됨. 이후 약 8년간 중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입음. 어린 나이에 겪은 이 피해가 훗날 전시 성폭력 근절 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됨.
콕세터가 W. W. 루즈 볼의 고전 수학 오락서 『Mathematical Recreations and Essays』 11판을 개정해 펴내며 생일 문제를 수록함(45쪽). 이 책은 생일 문제의 기원을 해럴드 대븐포트와 연결하는 서술의 표준 출처가 됨. 생일 문제가 레크리에이션 수학의 단골 문제로 자리 잡는 계기.
아시아 안팎으로 이동한 서양꿀벌 군집을 통해 바로아응애가 서양꿀벌에 정착. 이후 세계 양봉업의 주요 위협으로 확산,
보몬트 뉴홀이 1940년 사진을 독립된 예술로 다루는 부서를 세움. 이후 에드워드 스타이컨(1947–1961)·존 자코우스키(1962–1991) 등이 이끌며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 컬렉션으로 성장. 사진을 미술관 미술의 정식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진사적으로 중요한 제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