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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33 20건
93년 전

일제강점기 궁역 축소와 전각 철거가 이어진 가운데 덕수궁이 일반에 공개되는 공원으로 바뀜. 석조전도 미술품을 전시하는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함. 시민의 출입이 가능해진 변화와 함께, 황실의 생활·정무 공간이 해체되고 식민지기의 관람 공간으로 재편된 역사를 지닌 조치.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평양에서 정기 대항전을 열었음. 두 도시의 축구단이 서로 초청하는 틀을 갖추면서 봄·가을에 교대로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음.

이 정기전은 1929년 처음 열린 경평축구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주최 방식과 대회 명칭이 달라진 새로운 단계였음. 자료에 따라 세부 경기일과 회차 서술에 차이가 있어 월 단위로 표시함.

경평축구대항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네바 군축회의 철수와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와 동등한 군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결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11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추인.

탈퇴는 국제연맹 규약에 따른 통고 기간을 거쳐 발효됐으며, 독일 정부는 이후 공군 창설과 징병제 부활 등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위반하는 재무장 정책을 추진.

조선체육회와 조선체육계사가 공동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가 후원한 대항전이 서울 정동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렸음. 양 팀은 세 경기에서 각각 1승 1무 1패를 기록했음.

1929년과 1930년 대회를 잇는 행사로 소개되었지만 주최·후원 체계는 달라졌음. 같은 해에 열린 여러 경평 경기와 뒤이은 정기전을 구분하면, 자료마다 대회 회차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됨.

경평축구대항전

경성의 축구인들이 사회 각계의 지원을 받아 경성축구단을 창단했음. 여운형이 이사장을 맡았고, 이영민·김용식 등 유력 선수들이 참여했음.

경성과 평양 양쪽에 정식 축구단이 갖춰지면서 경평전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대표 선수를 모으던 방식에서 도시 축구단끼리 교류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기반을 얻었음.

경평축구대항전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에서 경성과 평양의 축구 선수들이 다시 맞붙었음. 1929~1930년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 이어 평양을 무대로 도시 간 대결이 펼쳐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이었음.

이 시기의 친선경기와 그해 가을의 대항전·정기전은 자료마다 회차를 다르게 세는 경우가 있음. 여기서는 특정한 ‘제몇 회’로 단정하지 않고, 1933년 봄 평양에서 교류가 재개된 흐름을 기록함.

경평축구대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