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세라 카바예 출생
스페인의 성악가 몽세라 카바예. (~2018년)
스페인의 성악가 몽세라 카바예. (~2018년)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나카니시 후토시. (~2023년)
대한민국의 시인 박재삼. (~1997년)
프랑스의 배우 장폴 벨몽도. (~2021년)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클로드 코엔타누지.
일본 정부가 국제연맹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고. 국제연맹 총회가 리튼 조사단 보고서를 토대로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는 결의를 채택하자 일본 대표단이 총회장에서 퇴장한 데 이은 조치.
국제연맹 규약에 따라 탈퇴는 통고 2년 뒤 발효. 일본은 탈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만주국 지배를 유지하고 중국 대륙에서 군사 활동을 확대.
조반니 브라스(Giovanni Brass)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생. 어린 시절 베네치아로 옮겨 성장했으며, 이후 틴토 브라스라는 예명으로 영화감독·각본가·편집자로 활동한 인물. 예명은 화가 이탈리코 브라스가 붙여 준 ‘틴토레토’라는 애칭에서 유래.
서울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열어 여성 대상 서양화 수업을 구상하고 직접 지도함. 나이와 기존 미술 소양에 문턱을 두지 않고 유화·수채화·목탄화 등을 가르치려 했으나 학생 모집과 재정이 어려워 수개월 만에 문을 닫았음.
그리스 아르카디아의 루트라 이레아스에서 콘스탄티노스 가브라스라는 이름으로 출생. 훗날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제트》와 《의문의 실종》 등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다룬 정치영화를 연출한 감독.
이승만이 국제연맹 사무총장에게 한국과 만주의 한인 문제를 제기하는 서한을 보내고, 일본의 대륙 침략과 한국 독립의 연관성을 호소했음.
1933년 2월 8일, 제네바에 머물던 이승만은 국제연맹 사무총장 에릭 드러먼드에게 서한을 보냄. 일본의 만주 침략이 국제연맹에서 논의되던 때에, 한국의 식민지화와 만주에 사는 한인들의 처지가 그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음. 같은 날 미국 국무장관 헨리 스팀슨에게도 한국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음.
그는 1932년 11월 임시정부의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된 뒤 유럽으로 향했음. 제네바에서는 언론인과 외교관을 만나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알렸으며, 리튼보고서를 검토하여 《만주의 한국인들》(The Koreans in Manchuria)을 펴냈음. 책과 서한에서 만주 한인의 국적·토지·이주 문제를 일본의 팽창정책과 연결하여 설명했음.
이 활동은 국제연맹이 다루던 만주 문제 속에 한국인의 목소리를 포함시키려는 외교적 시도였음. 그의 활동과 별개로 국제연맹은 리튼보고서를 채택하였고 일본은 탈퇴의 길을 택했음. 한국의 독립이나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은 이 과정에서 실현되지 않았음.
해리 버턴이 매장실의 석관을 촬영하여 발굴 현장의 마지막 사진 기록을 남긴 작업. 수년간 축적한 현장 사진과 유물 사진은 발견 당시 배치와 반출 과정을 재구성하는 핵심 자료가 되었으며, 본격적인 발굴·정리 이후에도 기록을 완성하려는 노력의 결실.
평양 지역의 축구인들이 무오축구단 출신 선수 등을 바탕으로 평양축구단을 조직했음. 학교·직장·상업 활동을 하던 선수들을 도시를 대표하는 팀으로 모으려는 움직임이었음.
경평전 초기의 임시 선발팀과 정식 축구단은 같은 개념이 아님. 평양축구단의 출범은 이후 경성축구단과의 정기 교류를 뒷받침하는 조직적 기반이 되었음.
1931년부터 협업하던 마르와 영화 미술가 피에르 케페르의 사진 스튜디오가 뇌이쉬르센에서 공식 등록됨. 두 사람은 ‘케페르–도라 마르’라는 이름으로 초상·패션·광고 사진을 제작하고 잡지에 발표함. 공동 명의로 유통된 사진 가운데 다수는 마르가 직접 촬영했으며, 이 시기에 전문 사진가로서 기술과 고객 기반을 넓힘.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등과 함께 입학한 시기. 북간도에서 중등교육을 받으며 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운 과정. 이후 평양과 용정, 서울로 이어지는 이동에 앞선 청소년기의 중요한 교육 단계.
초기 모험담이 어둠숲과 외로운 산의 보물 분쟁까지 확대되는 집필 과정. 바르드의 등장과 소린의 탐욕을 통해 결말의 윤리적 갈등이 깊어지는 원고 발전. 남아 있는 원고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략적 집필 시기.
와이키키의 상인 엘러리 천이 가족 가게인 킹스미스 의류점에서 손님이 주문 제작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도록 화려한 무늬 셔츠를 기성품으로 제작해 매장에 비치·판매함. 이는 초기 하와이안 셔츠를 맞춤복에서 즉시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됨.
매장 창문에는 ‘Hawaiian Shirts’라는 안내문을 내건 것으로 전해짐. 이후 엘러리 천은 1936년 ‘Aloha Sportswear’, 1937년 ‘Aloha Shirt’ 명칭을 상표로 등록하며 알로하 셔츠의 상업적 정착에 기여함.
1927년 동인지로 펴내던 《한글》을 학회 기관지로 다시 창간함. 국어학 연구 논문과 한글 보급 자료를 싣는 학술지로 자리 잡았으며, 2020년 기준 통권 327호까지 이어짐. 우리말 연구 성과를 쌓아 온 대표적 어학 학술지.
《삼천리》에 유럽과 미국 여행을 기록한 「구미유기」를 연재하기 시작함. 연재는 1935년 2월까지 이어졌으며, 회화 외에도 기행문을 통해 해외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