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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20 20건
106년 전

대흉작에 따른 재정난, 교내 갈등과 사고, 마적의 습격, 일제의 가중되는 탄압이 겹치며 신흥무관학교 폐교. 1911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한 독립군 양성기관의 약 9년 운영 종료.

폐교 뒤 지청천은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와 연합.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력은 이후 여러 독립군 부대와 군정 조직에서 활동하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 형성.

일제와 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을 피해 신흥무관학교가 안도현 밀림 지대로 이동. 지청천·김동삼 등은 소속 인력과 함께 제2의 군사기지 구축과 독립전쟁 준비를 추진.

그러나 피난지에서도 학교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워 약 한 달 뒤인 1920년 8월경 해산. 폐교 뒤 생도와 교관 인력은 독립군 부대로 편입. ```

일제와 장쭤린 군벌 측 중국 관헌이 합동수색대를 편성해 신흥무관학교와 한족회 등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를 습격하고 독립운동가를 체포·살해.

1920년 1월의 한족회 해산·학교 폐쇄 명령 뒤 탄압이 무력 작전으로 확대된 시점. 신흥무관학교의 안도현 이동과 운영 종료로 이어진 직접적 배경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