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렬 출생
김익렬이 경상남도 하동에서 출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포털의 한국역대인물정보가 생몰년을 1921~1988년으로 제시하고, 지역 인물 소개 역시 1921년 출생으로 서술한 인물.
1919년 출생설과 6월 5일이라는 생일 표기도 유통되지만 원기록 대조가 충분하지 않아 월일을 확정하지 않은 연도 단위 기록. 출생연도에 관한 자료 차이가 남아 있는 상태.
김익렬이 경상남도 하동에서 출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포털의 한국역대인물정보가 생몰년을 1921~1988년으로 제시하고, 지역 인물 소개 역시 1921년 출생으로 서술한 인물.
1919년 출생설과 6월 5일이라는 생일 표기도 유통되지만 원기록 대조가 충분하지 않아 월일을 확정하지 않은 연도 단위 기록. 출생연도에 관한 자료 차이가 남아 있는 상태.
김명순이 잡지 『개벽』에 단편소설 「칠면조」를 발표.
주인공 순일이 슐츠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경제적 궁핍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그린 작품
셀머가 첫 알토 색소폰 시리즈인 Série 1922를 공식 발표. 이름에 1922가 들어가지만 공식 발표일은 1921년 12월 31일. 이어진 Modèle 22는 제작 방식과 구조를 개선하며 현대 색소폰 제조의 한 흐름을 형성.
휴면 상태에 빠졌던 학회(한글모)를 임경재·최두선·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으킴. 주시경 사후 끊어질 뻔한 국어 연구의 맥을 제자들이 이은 것으로, 한글 철자법 연구와 동인지 발간을 중심으로 활동함. 오늘날 조선어학회·한글학회로 이어지는 조직의 직접적 재출발점.
이승만이 이끄는 한국대표단이 워싱턴회의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다루어 달라는 호소문을 작성함.
1921년 12월 1일자로 작성된 한국대표단의 호소문은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다루어 달라고 요청함. 문서는 한국에 대한 불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평화도 보장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회의에서 한국인의 진술을 들을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음. 이승만과 서재필, 정한경, 미국인 고문 프레드 돌프와 찰스 토머스의 이름이 문서에 실려 있음.
호소문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이 과거 한국과 맺은 조약의 거중조정 조항을 중요한 근거로 제시했음. 이를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를 단순한 일본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약속과 동아시아 질서의 문제로 다루려 했음. 문서는 미국 상원의 공식 인쇄물로도 남아 있음.
그러나 이러한 청원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단은 회의의 정식 참가국 대표로 인정받지 못했고, 한국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올리는 데에도 실패했음. 워싱턴회의 외교는 국제 여론에 한국 문제를 알린 시도인 동시에, 승전국과 강대국 중심 국제회의에 기대었던 독립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음.
조지 멜퍼드 감독의 《족장 (The Sheik)》 미국 개봉. 루돌프 발렌티노가 사막의 족장 아메드 벤 하산을 연기하고, 유럽 여성을 납치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욕망을 로맨스로 구성한 작품.
사막·천막·부족·납치·성적 지배를 결합한 ‘셰이크 로맨스’의 대중적 확산. 아랍 남성을 야만적이고 관능적인 위협으로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유럽계 혈통이라는 설정을 통해 로맨스의 인종적 금기를 해소한 구조.
A. A. 밀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이 첫돌 선물로 곰 인형을 받음. 처음에는 에드워드 베어로 불렸던 이 인형과 다른 장난감들이 훗날 동화 속 인물의 바탕이 됐음.
이는 책의 출간일이나 가상 인물의 생일이 아니라, 작품이 탄생한 실제 생활 배경에 해당함.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봉쇄되어 제109호(1921년 5월 31일) 뒤 발행이 중단된 『독립신문』이, 1921년 8월 15일 제110호부터 속간. 김승학 사장 취임 뒤 신문사와 인쇄소의 재개방을 거쳐 발행을 재개했고, 김승학 운영기에는 제110호부터 제177호까지 모두 68호 발행.
이승만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동지회 결성을 주도했음. 동지회는 임시정부 옹호와 교민 단결을 표방하며 그의 외교활동을 뒷받침했음.
1921년 7월, 이승만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동지회 조직을 주도했음.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지도체제와 독립운동 방략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하와이로 돌아온 직후였음. 단체는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교민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내세웠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결집시켰음.
동지회는 《태평양잡지》를 활동의 매개로 삼고, 1924년 하와이 한인대표회를 계기로 조직과 정강을 정비했음. 정치적 독립운동 지원과 함께 교민의 경제적 역량을 키우려 했으며, 동지식산회사 운영과 동지촌 건설도 추진했음. 그러나 자본 부족과 경영난 속에 회사가 파산하면서 경제적 자립 구상은 좌절됨.
동지회는 이후에도 이승만의 중요한 정치적 후원조직으로 남았음. 동시에 다른 한인 단체들과 대표권과 재정, 외교활동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겪었음. 하와이 활동은 교육과 독립운동의 기반을 넓히는 과정이면서, 교민사회의 분열과 지도권 경쟁이 함께 나타난 과정이었음.
1921년 7월 초 김승학이 『독립신문』 2대 사장에 취임. 초대 사장 겸 주필 이광수와 영업부장 이영렬의 이탈 뒤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신문사와 인쇄소가 봉쇄된 상황에서, 안창호와 신문사 해제 방안을 논의하고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함. 그 결과 음력 5월 말 신문사와 인쇄소가 다시 개방되었고, 사장 김승학·주필 박은식·편집국장 차리석 체제로 운영 기반 재정비.
소련의 의사 가브릴 일리자로프. (~1982년)
영국의 왕족 에든버러 공작 필립. (~2021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재혁. (1895년~)
대한민국의 화가 이대원. (~2005년)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블리시. (~1975년)
소련의 과학자, 사회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 (~198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승규. (~1971년)
오스트리아의 평화운동가 알프레트 헤르만 프리트. (1864년~)
대한민국의 목회자 문동환. (~2019년)
대한민국의 작가 장용학.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