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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17건
128년 전

마닐라만 해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지만 홍콩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필리핀 독립 운동 세력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필리핀으로 불러들임. 미국 함정 맥컬록호를 타고 마닐라 카비테 항구로 입항.

참고로 당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미국은 스페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속셈이었음.

조지 듀이George Dewey) 준장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마닐라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둠. 홍콩에 머물던 함대는 전쟁 선포 직후 필리핀으로 출항했고 밤을 틈타 마닐라만 방어선을 뚫고 진입. 미국은 현대식 철갑선이고 스페인은 오래된 목강선이었음.

전투 시작 당시 조지 듀이가 기함 올림피아호의 함장에게 내린 "준비되면 쏘게, 그리들리(You may fire when you are ready, Gridley)"라는 말은 미국 해군사의 명언으로 남음.

메인호 폭발 사건으로 미국 내 전쟁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동결의안이 상/하원에서 통과. 핵심 내용은 쿠바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언하고, 스페인에 쿠바에서의 주권 포기와 군대 철수를 요구하고, 매킨리 대통령에게 스페인을 상대로한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

독립협회 회원과 한성 시민이 종로에서 첫 만민공동회를 열고 러시아의 군사·재정 간섭에 반대한 사건. 상인과 학생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하여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철수, 자주독립과 국권 수호를 요구한 대중 집회. 배재학당 학생 이승만도 군사권과 재정권을 러시아에 넘기는 데 반대하는 연설에 참여한 활동.

토론과 신문 논설로 전개되던 개혁 요구가 대규모 공개 정치집회로 확대되는 계기. 배재학당과 협성회에서 신학문과 토론을 경험한 이승만에게도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무대. 같은 해 이어진 그의 독립협회·언론 활동 및 11월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에 항의하는 운동과 연결되는 경험.

고종이 경운궁의 태극전을 중화전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명함. 당시의 태극전은 오늘날의 즉조당에 해당하며, 황제국의 공식 정전 역할을 맡기 위해 명칭과 용도를 바꾼 조치. 1902년 별도의 중층 중화전을 새로 세운 일과 구분되는 초기 황궁 정비 과정.

덕수궁
1897 3건
129년 전

1897년 미국으로 유학해 1903년까지 버지니아주의 로어노크대학에서 수학하고, 이듬해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 미국 유학을 통해 쌓은 영어 능력과 서구 학문에 대한 이해는 훗날 국제 외교 무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활용됨.

김규식 (우사)

독립협회 토론회에서 노비를 사고파는 관행의 부당성을 논의하고 노비 해방에 뜻을 모은 사건. 약 500명이 지켜본 토론 뒤 참석자들이 자신에게 속한 노비 100여 명을 풀어 준 것으로 전해지는 민권 의식의 확산 사례. 1894년 갑오개혁에서 이루어진 법적 노비제 폐지 이후에도 남아 있던 예속 관행에 대한 실천적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