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홍명보를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
대한축구협회가 최강희 감독 후임으로 홍명보를 선임함. 계약은 2년으로 발표됐고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팀을 맡아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제를 안음.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대한축구협회가 최강희 감독 후임으로 홍명보를 선임함. 계약은 2년으로 발표됐고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팀을 맡아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제를 안음.
일본 가시와 레이솔로 옮겨 해외 선수 생활을 이어 감. 일본에서 보낸 여러 시즌은 포항과 대표팀 경력 사이에 놓인 중요한 클럽 경험이었음.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대학 축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감. 대학 재학 중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수비의 뒤를 받치고 공격 전개에도 참여하는 리베로로 전환한 경험이 이후 대표팀 활약의 바탕이 됨.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음. 대표팀은 2무 1패로 탈락했지만, 수비수의 공격 가담과 중거리 슈팅 능력을 국제 무대에 보여 준 대회가 됨.
울산 현대가 홍명보를 새 감독으로 발표함. 같은 날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직에서 물러나며 행정 경험을 마무리했고, 처음으로 국내 프로 구단의 감독을 맡음.
국회 청문회에 전 대표팀 감독으로 출석해 월드컵에서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함. 의원들이 선임 면접의 공정성과 특혜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홍명보는 자신이 특혜나 이익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답변함.
서울에서 태어남.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수비수와 주장, 국가대표·클럽 지도자, 축구 행정가로 활동하게 됨.
울산이 강원FC에 2 대 1로 역전승하며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리그 우승을 확정함. 최근 세 시즌 준우승에 머물렀던 팀이 정상에 오르면서 홍명보도 국내 프로 감독으로 첫 리그 우승을 거둠.
영국 현지시간 8월 10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이 박주영과 구자철의 골로 일본에 2 대 0으로 승리함. 런던 올림픽 동메달은 한국 남자축구의 첫 올림픽 메달로, 홍명보 지도자 경력의 대표적 성과가 됨.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름. 같은 해 월드컵에 출전하며 장기간 한국 수비의 중심을 맡는 경력이 시작됨.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세 경기를 모두 소화함. 대표팀은 전패로 탈락했지만 대학생 수비수 홍명보는 국제대회 경험을 쌓으며 주전으로 자리 잡음.
J리그가 홍명보를 국제 홍보대사 가운데 한 명으로 발표함. 과거 소속 구단과 팬·지역사회의 관계를 잇고 일본 리그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로, 선수 경력이 국제 교류로 이어진 사례임.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첫해 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최우수선수상을 받음. 신인이 곧바로 MVP가 된 사례로, 수비뿐 아니라 경기 전개를 이끄는 역할을 인정받음.
연말 자선축구 경기를 시작해 소아암 어린이 등을 돕는 나눔 활동을 이어 감. 축구 장학생 후원과 별도로, 선수와 팬의 참여를 사회적 지원으로 연결하는 행사가 됨.
이집트 현지시간 10월 5일 열린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이 파라과이를 3 대 0으로 이김. 홍명보는 감독으로 처음 치른 세계대회에서 8강 진출을 이루며 연령별 대표팀 지도력을 보여 줌.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를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함. 정식 감독으로 팀을 이끌기 시작한 자리였으며,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 국제대회 성과를 함께 책임지는 역할을 맡음.
울산이 대구FC를 2 대 0으로 꺾고 세 경기를 남긴 채 우승을 확정함. 홍명보는 2022년에 이어 연속 우승을 이끌며 클럽 감독으로서의 성과를 확장함.
대구시교육청이 홍명보 장학회 설립을 인가했다고 발표함. 홍명보의 출연과 동료 축구선수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과 후진 선수를 지원하는 조직적 기반을 마련함.
FIFA 시상 행사에서 2002 한일 월드컵 브론즈볼을 받음.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평가하는 개인상으로, 대표팀의 4위 성적과 별도로 홍명보의 경기력을 인정한 수상이었음.
대한축구협회 이사회가 문체부 특정감사 조치 요구를 다툰 행정소송의 1심 패소에 대해 항소하기로 결정함. 감사에는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사건은 홍명보 개인의 형사 유무죄를 판단한 재판이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