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 태종, 대마도 정벌 명하고 이종무 출정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가 상왕으로 지내던 중 한성 인덕궁에서 승하함. 향년 63세.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는 상왕으로 예우받으며 지냈고, 사후 정종의 묘호가 올려짐.
정종은 제1차 왕자의 난 뒤 왕위에 올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사병 혁파와 군정 정비 등을 추진한 군주. 재위는 길지 않았지만,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넘기면서 조선 초기 권력 질서가 태종 체제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된 인물.
세종이 집현전을 경연·서연과 학술 연구, 제도 조사, 서적 편찬을 담당하는 궁중 학술 기관으로 정비함. 젊은 문신을 장기간 근무하게 하고 사가독서 등의 지원을 제공해 세종 대 학술·문화 사업의 인적 기반을 마련함.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 (1364년~)
상왕 태종이 연화동 이궁에서 사망함. 태종이 세종 즉위 뒤에도 보유하던 군사권이 세종에게 완전히 귀속되면서 세종의 친정이 본격화된 계기.
세종이 박연을 악학별좌에 임명하고 율관과 편경·편종 등 악기, 조회·회례·제례에 사용할 아악을 장기간 정비함. 조선의 국가 의례와 음악 체계를 확립하고 정간보와 향악 창작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마련함.
세종의 명을 받은 정초·변효문 등이 각 지역 노농의 경험을 조사해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함. 중국 농서의 내용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농업 경험을 수집해 반영한 관찬 농서임.
세종이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개선할 새 전세제도 공법 도입을 두고 문무백관부터 지방의 농민에 이르기까지 약 17만 명의 의견을 수렴함. 찬반과 지역별 사정을 확인한 뒤 시험 시행과 제도 보완을 이어간 장기 조세 개혁의 출발점.
황희 등이 1398년부터 1432년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를 종합해 계속 적용할 법규는 『신찬경제속육전』 6권에, 일시적으로 적용할 규정은 『육전등록』 6권에 나누어 편찬·간행함. 법전과 등록을 구분해 누적된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종 대 법제 정비 사업.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장영실 등이 물의 흐름을 이용해 정해진 시각마다 종·북·징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함.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돼 조선의 표준 시보 장치로 사용됨.
조선 조정이 이천의 감독 아래 약 20만 자의 금속활자 갑인자를 주조함. 이전 활자보다 자체와 조판 방식이 정교해져 인쇄 능률과 서적 편찬 역량을 높인 성과임.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
세종이 6조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던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가 안건을 먼저 심의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는 의정부서사제로 국정 운영 방식을 전환함. 집현전과 관료층의 성장 위에서 의정부의 정책 조정·심의 기능을 확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운영 방식을 조정한 변화.
세종 23년 음력 7월 23일 (율리우스력 8월 9일).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적장자로 출생.
왕세자 이향이 1441년 그릇에 빗물을 받아 강우량을 재는 방법을 시험하고 조정이 이를 개량함. 1442년 측우기의 규격과 측정용 주척을 정해 중앙과 지방 관아에 보급하고 전국적인 우량 관측·보고 제도를 확립함.
이순지·김담 등이 중국 역법을 바탕으로 한 『칠정산내편』을 1442년에 완성하고, 이슬람 역법을 토대로 한 『칠정산외편』을 1444년에 완성함. 두 역서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월오행성의 운행과 일식·월식을 계산할 수 있는 독자적 역법 체계를 마련한 성과.
세종이 백성이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는 새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함. 초성·중성·종성을 결합하는 문자 체계를 마련한 뒤 운서 번역과 행정 문서 적용 등 시험과 연구를 진행함.
조선이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대마도에서 해마다 보낼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하고 세사미두 200석, 체류 기간과 어업 허가 등을 규정함. 1419년 대마도 정벌과 1426년 삼포 개항 이후 왜구 억제와 교역 허용을 결합해 형성한 대일 통교 질서의 제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