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 등이 새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문제, 한문 학습 저하 우려, 이두와의 관계, 형정 처리에 새 문자를 사용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세종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운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를 들어 반박함. 상소 참여자들은 의금부에 하옥됐다가 대부분 이튿날 석방되고 정창손은 파직됨.
오랜 논의와 시험을 거쳐 토지의 비옥도를 전분6등, 해마다의 작황을 연분9등으로 나눠 전세를 부과하는 공법 최종안을 마련함. 1444년 하삼도 6현에서 먼저 시행됐으며 전국 확대는 후대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됨.
예종 (조선) 출생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1499년)
세종 대 조정이 태조·정종·태종실록을 네 질로 등사해 한양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함. 한 곳의 재난으로 기록 전체가 소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분산 보존 체계로, 조선 전기 4대 사고제의 기틀 확립. 임진왜란 때 세 곳의 사고가 소실된 가운데 전주사고본이 보존되어 조선 전기 실록 전승의 기반이 됨.
건강이 악화된 세종이 세자 이향에게 일상적인 정무인 서무를 대리하도록 함. 세종은 군사·인사 등 핵심 사안을 계속 관장하면서 문화·편찬 사업에 집중했으며, 세자의 국정 경험 축적과 왕위 계승 준비로 이어짐.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와 전의감 의관들이 중국·고려의 의서 150여 종에서 이론과 처방을 뽑아 병증별로 분류한 『의방유취』 365권을 편찬함. 동아시아 의학 지식을 대규모로 집성한 국가 편찬 사업으로, 세종 대 의학 정책이 향토 약재 정리에서 종합 의학 지식 체계화로 확장된 결과.
소헌왕후 사망
소헌왕후가 병이 깊어져 수양대군의 집에서 사망함. 세종은 왕후의 죽음 뒤 자녀들의 불경 편찬을 허락했으며, 이 사업은 이듬해 『석보상절』 완성으로 이어짐.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377년~)
세종,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반포
세종이 새 문자의 창제 목적과 제자 원리, 운용법을 설명한 해례를 갖춘 『훈민정음』을 간행·반포함. 훈민정음의 원리와 사용법을 공식화하고 새 문자의 보급 기반을 마련함.
정인지·권제·안지 등이 조선 왕실 선조의 행적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고 한글 가사와 한문 번역·주해를 갖춘 책으로 간행함. 1445년에 본문과 한시가 마련되고 1447년에 주해와 간행이 완성됐으며,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초기 국문 문헌이자 새 문자의 국가적 활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
세종, 단종을 왕세손으로 책봉
세종 30년, 음력 1457년 4월 3일 (율리우스력 5월 12일). 단종을 왕세손으로 책봉.
세종 대 조정이 개량한 화포의 주조법과 규격, 화약 제조·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간행해 군사 기밀로 보관함. 세종이 군기감의 화포 개량과 발사 시험을 직접 지휘한 뒤 1445년 각 도에 새 규격의 화포를 주조하게 한 사업을 집대성한 군서.
세종 사망
1450년 3월 30일(세종 32년 음력 2월 17일) 영응대군의 집 동별궁에서 사망함. 재위 32년 만의 사망이며 왕위는 세자 이향이 이어 문종으로 즉위함.
문종, 단종을 왕세자로 책봉
문종 즉위년, 음력 1450년 7월 20일 (율리우스력 8월 27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출생
이탈리아의 미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19년)
단종 즉위
음력 1452년 5월 14일 (율리우스력 6월 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제6대 국왕으로 즉위.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병으로 승하하면서 단종이 뒤를 이음.
세조 3년 음력 1457년 10월 21일 (율리우스력 11월 7일). 영월 유배지에서 16세의 나이로 승하. 실록에는 '자진'으로 기록, 야사나 민간 기록에는 '교살'당한 걸로 기록.
헨리 6세 사망
영국의 국왕 헨리 6세의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1453년~)
알브레히트 뒤러 출생
독일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 알브레히트 뒤러. (~1528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조각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14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