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이든 출생
영국의 정치인, 총리 앤서니 이든. (~1977년)
영국의 정치인, 총리 앤서니 이든. (~1977년)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알퐁스 도데. (1840년~)
1897년 미국으로 유학해 1903년까지 버지니아주의 로어노크대학에서 수학하고, 이듬해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 미국 유학을 통해 쌓은 영어 능력과 서구 학문에 대한 이해는 훗날 국제 외교 무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활용됨.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 중이었으며, 메인호(USS Maine)는 쿠바 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파견.
밤 9시 40분, 메인호가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 354명의 승조원 중 260여 명이 사망. 불안정한 폭약으로 인한 폭발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미국은 이를 스페인의 테러라고 단정.
미국의 수학자이자 인류학자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 (~1944년)
대한민국의 농학자 우장춘. (~1959년)
대한민국의 음악가, 지휘자 홍난파. (~194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쿠바 문제를 해결하고 스페인과 전쟁을 하기 위해 의회에 군사 개입 승인을 요청.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 (1826년~)
메인호 폭발 사건으로 미국 내 전쟁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동결의안이 상/하원에서 통과. 핵심 내용은 쿠바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언하고, 스페인에 쿠바에서의 주권 포기와 군대 철수를 요구하고, 매킨리 대통령에게 스페인을 상대로한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
스페인이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하자, 매킨리 대통령은 즉시 미 해군에 쿠바 북부 해안 봉쇄를 명령.
조지 듀이George Dewey) 준장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마닐라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둠. 홍콩에 머물던 함대는 전쟁 선포 직후 필리핀으로 출항했고 밤을 틈타 마닐라만 방어선을 뚫고 진입. 미국은 현대식 철갑선이고 스페인은 오래된 목강선이었음.
전투 시작 당시 조지 듀이가 기함 올림피아호의 함장에게 내린 "준비되면 쏘게, 그리들리(You may fire when you are ready, Gridley)"라는 말은 미국 해군사의 명언으로 남음.
일본의 영화 감독 미조구치 겐지. (~1956년)
마닐라만 해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지만 홍콩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필리핀 독립 운동 세력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필리핀으로 불러들임. 미국 함정 맥컬록호를 타고 마닐라 카비테 항구로 입항.
참고로 당시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미국은 스페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필리핀을 통치하려는 속셈이었음.
착공 6년 만인 1898년 5월 29일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올려 성당을 완공함. 라틴 십자형 평면에 벽돌로 쌓은 한국 최초의 순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라 '뾰족집'으로 불리며 장안의 명물이 됨. 준공 당시 이름은 자리 이름을 딴 종현성당.
중국의 군벌 정치가 장쉐량. (~2001년)
미국-스페인 전쟁 위해 미군 상륙.
이후 1903년 미국은 쿠바 제1공화국과 영구 조차 조약 체결, 현재까지 미국 해군 기지로 운영 중. 쿠바는 이 기지가 불법 점령지라며 반환율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묵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