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의 전신인 제조품 박물관, 런던에서 개관
1851년 만국박람회에서 구입한 물건 등을 바탕으로 말버러 하우스에 제조품 박물관을 설립함. 초대 관장 헨리 콜은 산업과 예술을 분리하기보다 좋은 디자인을 배우는 교육기관으로 박물관을 운영하고자 했음.
1851년 만국박람회에서 구입한 물건 등을 바탕으로 말버러 하우스에 제조품 박물관을 설립함. 초대 관장 헨리 콜은 산업과 예술을 분리하기보다 좋은 디자인을 배우는 교육기관으로 박물관을 운영하고자 했음.
미국의 부통령 윌리엄 R. 킹. (1786년~)
미국 매튜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이 이끄는 동인도 함대가 일본 원정길에 올라 류큐 왕국의 나하 앞바다에 첫 정박. 류큐 왕국 측이 방문을 거부했으나, 페리 일행은 무장 병력을 이끌고 상륙하여 슈리성 진군을 강행. 이후 왕궁 북쪽 궁전에서 친서를 전달하고 접대를 받음.
매튜 페리, 류큐왕국 총리관 상대모와 첫 공식 회견. 류큐 측에 미국 함대의 체류와 보급, 향후 교섭에 관한 요구 전달.
매튜 페리, 슈리성을 방문해 북전에서 류큐왕국 총리관 등과 회견. 외국 군함 지휘관의 슈리성 방문으로 류큐 조정 내부에 정치적 부담 발생.
매튜 페리, 나하에서 보급을 마친 뒤 군함 4척을 이끌고 에도 막부와의 교섭을 위해 우라가로 출항. 류큐는 페리 함대의 일본 원정 과정에서 중간 거점 역할 수행.
매튜 페리, 미국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의 친서를 에도 막부에 전달한 뒤 나하로 귀항. 류큐 측에 시설 임대, 석탄 저장, 시장 설치, 감시 중단 등 여러 요구를 제시하고 승낙받음.
매슈 폰테인 모리의 제안으로 유럽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브뤼셀에서 기상·해양 관측의 국제 협력 방식을 논의한 회의. 선박 관측일지의 공통 양식과 관측·기록 지침 합의로 이어진, 이후 IMO와 WMO의 국제 자료교환 체계에 앞선 중요한 토대.
철도 객차의 수리와 이후 제작을 위한 호프타운레인 차량공장 건설. 초기 12명의 작업자로 출발해 성장한 산업 시설로, 철도 운행이 지역 제조업과 고용으로 이어진 흔적.
매튜 페리, 군함 3척을 이끌고 다시 나하 항에 내항. 슈리성을 재방문하고 보급을 마친 뒤 에도 방면으로 출항.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허위. (~1908년)
프랑스의 과학자 앙리 푸앵카레. (~1974년)
미국과 류큐왕국, 류미수호조약 체결을 위한 본격 교섭 시작. 조약안 검토와 수정 협의 진행.
매슈 페리와 류큐왕국 대표 상굉훈 등, 류미수호조약에 조인. 한자본과 영어본 조인서를 작성·교환하며 미국과 류큐 사이의 공식 조약 체결.
1854년 런던 소호의 콜레라 유행을 조사한 의사 존 스노가 환자 발생 지점과 식수 이용을 비교해 브로드가 공동 우물 펌프를 감염원으로 지목함. 지역 당국은 9월 8일 펌프 손잡이를 제거했고, 이 조사는 질병 발생의 공간적 분포와 원인 노출의 관계를 분석하는 현대 역학의 대표적 사례가 됨. 단일 조치만으로 당시 유행이 종식되었다고 단정하는 해석은 피해야 함.
1854년 10월 25일 크림 전쟁 발라클라바 전투 도중 영국 경기병대가 러시아 포병 진지로 돌격해 큰 피해를 입음. 명령 전달과 해석의 실패가 낳은 군사적 참사로, 테니슨의 시 《경기병대의 돌격》에 영감을 준 사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영어로 번역해 존 채프먼을 통해 출간. 독일어 제2판을 바탕으로 한 번역으로, 번역자 이름은 당시 사용하던 메리언 에번스.
슈트라우스 번역에 이어 독일의 종교·철학 논쟁을 영어권에 전달한 작업. 종교를 인간의 감정과 인식에 관련지어 논의한 저작과의 만남은 에번스의 지적 경력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