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700–1899년의 기록 846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875–1899 · 345건
관련 엔티티
296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6%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875–1899 · 345건

에밀리 디킨슨 사망 뒤 동생 라비니아가 언니가 받은 편지들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방대한 시 원고를 발견함. 라비니아가 출판을 추진하면서 생전에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의 사후 출판이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됨.

하와이 왕국의 칼라카우아 왕은 미국·유럽계 기업인들의 지지를 받던 비밀 결사 ‘하와이 리그(Hawaiian League)’와 그 민병대인 ‘호놀룰루 라이플즈(Honolulu Rifles)’의 압박 속에서, 왕궁이 포위된 가운데 무력 위협 아래 헌법에 서명하게 됨. 이른바 ‘베요넷 헌법(Bayonet Constitution)’은 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내각과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했으며, 재산 기준 투표제를 도입해 부유한 외국인에게 유리한 정치 구조를 만듬. 동시에 미국인과 유럽인의 참정권은 확대된 반면, 하와이 원주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약화. 이로 인해 하와이 왕정은 형식만 남은 상태로 전락.

일리노이주 대법원이 헤이마켓 피고들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급심 판단을 유지. 배심원 구성과 공모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된 가운데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한 연방 법원 절차와 감형 청원이 이어진 상황.

앨버트 파슨스·아우구스트 슈피스·조지 엥겔·아돌프 피셔가 시카고에서 교수형으로 처형. 폭탄 투척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집행으로, 피고들은 이후 국제 노동운동에서 헤이마켓의 순교자로 추모.

헤이마켓 사건

처형된 네 명과 수감 중 숨진 루이스 링의 장례 행렬이 시카고에서 진행. 다수의 추모객이 참여했으며 유해는 발트하임 묘지에 안장. 재판 결과에 대한 항의와 노동운동의 공동 추모가 결합한 행사.

헤이마켓 사건

조미수호조약(1882) 이후 종교의 자유를 내다본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가 '김가밀로'라는 한국인 회장 명의로 종현 일대 대지를 사들이기 시작함. 조불수호통상조약(1886) 이듬해인 1887년 5월 나머지 부지를 마저 사들여 침계 윤정현의 옛 저택 자리를 확보하고, 그해 겨울부터 언덕을 깎는 정지작업에 들어감. 매입·건축 비용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지원함.

명동성당

새뮤얼 무어와 에드워드 에이블링이 번역하고 엥겔스가 편집한 영어 초판이 출간됨. 독일어 제3판을 기본으로 프랑스어판도 검토했으며, 엘리너 마르크스는 영국의 저술과 의회 보고서에서 가져온 인용문을 원문과 대조함.

책의 주요 분석 사례가 된 영국 사회에서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완역판이 마련된 계기. 1886년 11월에 작성된 엥겔스의 서문 날짜와 실제 출간 연도인 1887년은 서로 구별되는 시점.

자본론 제1권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신 영희전과 가깝고 궁궐을 내려다본다는 이유로 조선 조정이 성당 부지의 소유권을 억류하고 공사 중단을 요구함. 1888년 4월에는 명동성당 건립을 직접적 계기로 금교령을 선포해 천주교는 물론 개신교의 전교 활동까지 막음. 프랑스 공사가 부임해 강하게 항의한 끝에 1890년에야 분쟁이 풀려 공사 재개의 길이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