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톨먼 출생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 (~195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 (~1959년)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 외교관 오시마 히로시. (~1975년)
조직노동직능연맹(FOTLU)이 제시한 목표일에 맞춰 미국 여러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가 전개. 시카고는 숙련·비숙련 노동자와 노동조합·개혁가·급진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한 운동의 중심지. 이후 매코믹 공장 충돌과 헤이마켓 집회로 이어진 배경.
시카고 매코믹 수확기 공장 앞의 파업 노동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경찰 발포로 노동자들이 사망. 다음 날 헤이마켓 항의 집회를 촉발한 사건으로, 사망자 수는 자료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기록.
매코믹 공장 앞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노동자 집회가 헤이마켓 인근 데스플레인스가에서 개최.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되던 집회 말미에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신원 미상의 인물이 경찰 대열에 폭탄을 투척했고, 뒤이어 총격과 혼란이 발생.
경찰관들과 시민들이 사망·부상했으나 폭탄 투척자의 신원과 시민 측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 사건은 노동운동가 체포와 논쟁적 재판으로 확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강기덕. (~?)
폭발 다음 날부터 경찰이 노동운동가와 무정부주의자를 대거 체포하고 급진 운동의 활동 거점을 수색. 폭탄 투척자의 특정과 별개로 정치적 신념·신문·조직 활동이 수사의 주요 대상이 된 전개.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 (~1986년)
1886년 5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55세로 사망함. 나흘 뒤 애머스트의 웨스트 묘지에 안장됨.
터키의 축구 감독 알리 사미 옌. (~1951년)
경찰관 마티아스 디건의 죽음과 관련해 대배심이 31명을 기소. 앨버트 파슨스·아우구스트 슈피스·오스카 니베·루이스 링·조지 엥겔·아돌프 피셔·마이클 슈바프·새뮤얼 필든 8명이 재판 대상이 된 절차.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 (~1924년)
헤이마켓 사건 재판의 배심원 선정 절차가 시작되고 도피 중이던 앨버트 파슨스가 법정에 자진 출석. 배심원 선발은 7월 중순까지 이어졌으며, 피고들에 대한 사전 편견과 공정성 문제가 이후 주요 논쟁으로 부상.
배심원 선정을 마친 뒤 증인 심리가 시작. 검찰은 피고들을 직접적인 폭탄 투척자로만 다루기보다 연설과 조직 활동으로 폭력을 선동·공모한 책임을 추궁했고, 변호인단은 개별 피고와 폭발의 연결 증거에 이의를 제기.
배심원이 법정에 돌아와 7명에 대한 사형과 오스카 니베에 대한 징역 15년의 유죄 평결을 제출한 절차. 재판 진행 기록은 8월 20일 제출·등재로 기록하며, 보존된 서명 평결문 자체에는 전날인 8월 19일이 기재된 차이.
재심 신청 기각과 피고들의 진술 뒤 조지프 게리 판사가 형을 선고. 배심원 평결과 별개의 법원 선고 단계로, 이후 변호인단의 주 대법원 상소와 국내외 구명운동으로 이어진 절차.
미국 뉴욕항 베들로섬(현 리버티섬)에서 자유의 여신상 헌정·제막식이 열리고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건너온 동상을 미국을 대표해 공식 수락. 뉴욕에서는 행진과 수상 퍼레이드가 열렸으며, 여신상은 이후 자유와 이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음.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조각하고 프랑스에서 제작해 운송한 기념물이 정식으로 공개된 날짜로, 미·프랑스 관계와 미국의 이민사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건임.
존 펨버턴의 파트너이자 경리였던 프랭크 매슨 로빈슨이 두 C가 광고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명칭을 제안함. 그는 스펜서체로 이름을 적었고 펨버턴 회사의 동료들이 그 표기를 만장일치로 채택함. 이 필기체 표기는 초기 광고에서 제품을 식별하는 브랜드 표기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