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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10월 26일 미국 애리조나 준주 툼스톤에서 버질·와이엇·모건 어프와 닥 홀리데이가 클랜턴·맥로리 일행과 총격전을 벌인 사건. O.K. 코랄 인근의 빈터에서 약 30초간 총격이 이어져 빌리 클랜턴과 톰·프랭크 맥로리 등 3명이 사망함.

지역 정치와 법 집행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이후 서부극과 대중문화에서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상징적인 총격전으로 재현됨. 널리 알려진 이름과 달리 총격은 O.K. 코랄 내부가 아닌 인근에서 발생함.

미국 석유 산업의 유력 기업인 스탠더드 오일 관련 주주들이 1882년 1월 2일 날짜의 트러스트 협정을 통해 여러 회사의 주식과 경영 통제권을 아홉 명의 수탁자 아래 집중시키는 구조를 마련함. 이는 대기업의 산업 통합과 독점적 지배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으며, 훗날 미국 반독점 규제 논쟁과 1911년 스탠더드 오일 분할 판결의 역사적 배경이 됨.

에스텔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영국 맨체스터 지역 올드트래퍼드의 드레이턴 테라스에서 태어남. 변호사이자 법률 개혁가인 리처드 팽크허스트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둘째 딸이었으며, 부모 모두 여성 참정권과 사회 개혁을 지지하는 가정에서 성장함.

청나라의 알선으로 조선의 신헌, 김홍집과 미국의 슈펠트(Schufeldt) 제독이 서명한 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 거중조정: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부당한 위협을 받을 때 서로 돕고 중재한다는 내용
  • 치외법권 및 최혜국 대우: 미국인에 대한 영사재판권 인정과 미국에게 최고 수준의 경제적·정치적 혜택을 부여하는 불평등 조약

미국 측이 조약 체결에 쓸 국기를 요청하자, 김홍집의 지시를 받은 역관 이응준이 제물포에 정박한 미군함 안에서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를 그린 기를 제작·사용함.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 자리에서 쓰인 이 기는 오늘날 학계가 보는 '최초의 태극기'로, 조선이 근대 국가로서 처음 자국 국기를 내건 사례. 박영효의 기와 함께 태극기 기원 논의의 중심에 있음.

태극기

뉴욕의 중앙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이 노동자들의 권리와 기여를 기리는 행사를 조직해 미국 최초의 Labor Day 행사가 열렸다. 이후 여러 주가 노동절을 공휴일로 채택했고, 1894년에는 매년 9월 첫째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 미국 노동절은 5월 1일 국제 노동절과는 별개의 전통이다.

제물포 조약 사후 처리를 위한 제3차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가던 1882년 9월, 증기선 메이지마루 선상에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직접 그려 사용함. 오랫동안 '최초의 태극기'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넉 달 앞선 이응준의 기를 변형해 4괘의 좌우를 바꿔 쓴 것으로 밝혀짐. 국가 사절이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게양한 이른 사례로, 태극기가 대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기 시작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