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티니 출생
인도네시아의 민족운동가 카르티니. (~1904년)
인도네시아의 민족운동가 카르티니. (~1904년)
영국의 물리학자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 (~1959년)
리투아니아의 경제학자, 정치인 유르기스 샤울리스. (~1948년)
독일의 정치인 한스 라머스. (~1962년)
쇼타이 왕은 도쿄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음. 병을 핑계로 끝까지 이주를 늦추며 저항하려 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나하 항을 통해 도쿄로 강제 이주.
세르비아의 물리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 (~1958년)
지석영이 일본 해군이 부산에 설치한 제생의원에서 원장 마쓰마에 유즈루와 군의 도즈카 세이사이에게 약 두 달간 우두 접종법을 배움. 두묘와 종두침 두 개를 얻어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충주의 처가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에 의한 공개적 우두 접종의 초기 사례이자 이후 국내 종두 보급의 출발점.
부산 제생의원에서 우두법을 배운 지석영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이 공개적으로 시행한 종두법의 초기 사례이자, 국내 우두 보급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출발점. 이후 서울에서도 종두를 시행하며 우두법 보급 활동을 이어감.
오스트리아의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 (~1903년)
프랑스의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1821년~)
아일랜드의 정치인 윌리엄 코즈그레이브. (~1965년)
프랑스의 예술가, 화가 앙드레 드랭. (~1954년)
지석영이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 도쿄에 건너가 우두종계소에서 종두 기술을 익힘. 두묘의 제조·저장법과 송아지 사양법, 채장법을 배우고 두묘 50병을 확보해 귀국함. 수입한 두묘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종두 재료를 마련·보급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의 형성.
조선 경상도 동래에서 출생. 훗날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좌우합작운동·남북협상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정치인·외교가로 활동. (~1950년)
미국의 극작가 에드거 앨런 울프. (~1943년)
러시아 혁명가, 총리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케렌스키. (~1970년)
폴란드의 군인, 정치인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1943년)
벨기에의 음악가 앙리 비외탕. (18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