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 『유도』 등에 유교와 일본의 전쟁 수행을 결합하는 논설과 한시를 발표함.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는 한시 등도 발표하며 유교적 논리를 전쟁과 조선인 동원에 연결하는 글을 작성함.
함석헌이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함. 이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등 『성서조선』 관계자들이 검거되었고, 잡지는 강제로 폐간됨.
코넬 울리치가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Dime Detective》 1942년 2월호에 게재함. 이 작품은 1944년 단편집 《After-Dinner Story》에 「Rear Window」라는 제목으로 수록됨. 해당 텍스트가 1954년 영화 《이창》의 각색 원작으로 활용됨.
오펜하이머, 버클리에서 원자폭탄 이론 연구 그룹 조직
오펜하이머가 버클리에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로버트 서버 등 이론물리학자들을 모아 핵분열 무기의 가능성과 설계, 임계질량, 폭발 메커니즘 등을 검토하는 연구를 조직함. 연구 결과는 원자폭탄 개발에 필요한 이론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정리했고, 오펜하이머가 이후 중앙 무기연구소를 이끌 후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됨.
《청춘극장》으로 연극무대 데뷔
최은희가 극단 아랑의 연구생 생활을 거쳐 연극 《청춘극장》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 국가기록원의 인물 소개가 데뷔 연도를 1942년으로 제시한 초기 무대 경력.
한국영상자료원 김종원의 인물 연구는 문정복의 소개로 아랑에 들어가 《청춘극장》에 출연한 시기를 1943년으로 서술. 연극 활동의 시작 연도에 차이가 남아 있는 두 기록.
마르셀 뮐, 파리 음악원 색소폰 강좌 담당
파리 음악원장 클로드 델뱅쿠르가 마르셀 뮐에게 색소폰 강좌를 맡김. 뮐의 연주와 교육은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양성에 큰 영향을 줌. 재즈 무대뿐 아니라 전문 음악교육과 클래식 연주에서도 악기의 기반이 넓어진 계기.
미국의 나일론 공급, 스타킹에서 전쟁 물자로 전환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나일론이 방위용 소재로 취급되면서 민간 스타킹 시장의 공급이 제한됨. 가볍고 강한 합성섬유를 낙하산 등 군수 물자 생산에 사용함.
제작사가 웰스의 영화를 크게 편집하면서 허먼의 음악 상당 부분이 삭제됨. 작곡가가 자신의 이름 표기를 거부할 정도로 반발했던 작업으로, 영화음악 역시 제작 권력과 최종 편집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 줌.
미국 항공자문위원회가 클리블랜드의 풍동에 설치할 공기조화 시스템을 캐리어에 발주함. 캐리어는 항공 실험에 필요한 환경을 구현하는 어려운 공학 과제에 참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