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50년의 기록 92건

76년 전.한 해의 기록을 월별로 살펴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6월 · 15건
관련 엔티티
67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8%
월을 선택해 기록 보기 6월 · 15건

굿이 저서 『Probability and the Weighing of Evidence』에서 생일 문제를 다루며 콕세터의 『Mathematical Recreations and Essays』 11판을 출처로 인용함(38쪽). 대븐포트 기원설이 후대 문헌으로 전해지는 경로가 된 대목. 생일 문제가 퍼즐을 넘어 확률적 추론과 증거 평가의 사례로 쓰였음을 보여 줌.

생일 문제

국제결제은행이 1950년부터 1958년까지 유럽결제동맹(EPU)의 대행기관을 맡아 서유럽 국가 간 무역 대금을 다자 상계 방식으로 청산. 마셜 플랜의 틀 안에서 전후 유럽 통화의 태환성 회복을 지원. BIS가 전후 유럽 통화 협력의 실무 중심으로 자리 잡은 계기.

국제결제은행

6년제 진명여자중학교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누고 각 과정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조정. 개편 시기는 총동창회의 『진명 100년 인물 100년』에 1950년 6월 1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1951년으로 기록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져 있던 광화문이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피해를 입어 상부 목조 문루가 불타고 석축만 남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훼손에 이어 전쟁으로 다시 궁문의 모습을 잃은 사건. 남은 석축과 과거 도면·사진은 이후 복원의 바탕이 됨.

미국 정부가 국제무역기구 설립을 위한 아바나 헌장을 의회에 다시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해. 미국의 참여 전망이 사라지면서 상설 국제무역기구 구상이 실현되지 못한 전환점.

그 결과 임시 협정이던 GATT와 체약국 회의·사무국이 무역협상과 규칙 운영을 이어 맡게 된 경위. 여기서 체약국은 협정에 참여해 권리와 의무를 받아들인 국가를 뜻하며, 정식 국제기구인 훗날의 WTO 회원국이라는 표현과 구분.

1948년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유니세프가 한국 정부와 기본협정을 체결함. 한국전쟁을 거치며 분유와 담요 등 아동을 위한 구호물자를 공급했고, 이후에도 보건·영양 지원을 이어감. 공식 협력 연혁은 1950~1993년 한국에 제공된 지원을 2,390만 달러 이상으로 집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