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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의 기록 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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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5월 1일 국제노동절을 공산주의 선전과 연결하여 비판하고, 이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기념일을 정하도록 지시함. 국가기록원에 소개된 시정명령은 반공주의가 노동자의 기념일과 노동운동을 재편하는 기준으로 작용한 사실을 보여 줌.

이 지시에 따라 대한노총은 1958년 제1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단체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음. 1957년의 대통령 지시와 1958년 노동단체의 결정은 구별됨.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의 법제화는 이후 1963년에 이루어졌음.

야당의 시국강연회가 장충단공원에서 열리고 조병옥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연설함. 강연 과정에서 집회 방해와 폭력 사태가 발생했으며, 국회는 이후 관련자를 조속히 조사·처단하고 향후 집회 경비를 강화하도록 정부에 건의함.

국립극장이 대구 생활을 마치고 서울 명동의 시공관으로 돌아옴. 서울시와 건물을 함께 쓰는 조건으로 공연장을 마련하고 신협 출신 배우들을 중심으로 전속 국립극단을 구성함. 이 건물은 오늘날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어짐.

환도 지연과 전속극단의 재구성

휴전 뒤 정부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옛 부민관은 국회가 사용하고 있었고 명동 시공관은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어 국립극장의 복귀가 늦어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환도 촉구를 거쳐 공동 사용 방식으로 공연 공간을 확보함.

대구 시절 전속극단이 없던 국립극장은 해체된 신협의 배우들을 불러 국립극단으로 조직했으나, 이듬해 유치진이 신협을 재건하면서 많은 단원이 이탈함. 잔류 단원들의 공연을 이어간 뒤 신협·민극을 전속단체로 두는 재편이 이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