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비열한 거리》가 뉴욕 극장 개봉에 앞서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뉴욕의 이탈리아계 공동체와 소규모 범죄자들의 우정·신앙·폭력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제 소개와 이후 평단의 반응을 통해 스콜세지의 초기 대표작으로 자리 잡는 계기.
《비열한 거리》가 뉴욕 극장 개봉에 앞서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상영. 뉴욕의 이탈리아계 공동체와 소규모 범죄자들의 우정·신앙·폭력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제 소개와 이후 평단의 반응을 통해 스콜세지의 초기 대표작으로 자리 잡는 계기.
조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케냐타 국제회의센터에 마련된 UNEP 본부를 개소한 날. 북미·서유럽에 집중된 유엔 주요 조직의 지리적 편중을 줄이고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반영한 입지의 실현. 1975년에는 나이로비 외곽의 옛 커피농장 부지로 이전하여 현재 본부의 기반을 마련한 과정.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됨.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넘어 시나이반도로,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으로 공격을 전개.
전쟁은 냉전기의 미·소 경쟁과 맞물렸으며,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둘러싼 갈등이 아랍 산유국의 감산·금수정책으로 이어지는 배경을 형성. 전쟁 이후에는 미국의 중재 외교와 이집트·이스라엘 간 협상이 본격화되는 계기로 작용.
경상남도 거제군 옥포만에서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 기공식이 열림.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대규모 선박 건조 설비를 확충하려는 사업으로, 1981년 조선소 준공과 한국 조선업의 성장으로 이어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뉴욕에서 극장 개봉. 같은 달 2일 제11회 뉴욕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되었으며, 26일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개봉.
로버트 드 니로가 빚을 갚지 않는 조니 보이 역으로 하비 카이텔과 호흡을 맞춘 작품. 드 니로와 스콜세지의 첫 장편 협업으로, 뉴욕 리틀이탈리의 소규모 범죄 집단과 가톨릭 신앙의 갈등을 함께 그린 이야기.
하비 카이텔이 가톨릭 신앙과 범죄 세계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며 친구 조니 보이의 빚 문제에 휘말리는 찰리 역으로 출연.
태국 방콕에서 헌법 제정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던 학생·시민 시위가 군·경과의 유혈 충돌로 확대됨.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같은 날 타놈 끼띠카촌 총리의 군사정권이 사임함.
학생운동에서 대중적 반독재운동으로 발전한 이 항쟁은 태국의 군부 중심 정치질서가 일시적으로 해체되고 민간정부가 등장한 계기가 됨. 이후 1976년 10월 군부의 재집권과 민주화운동 탄압으로 이어지는 태국 현대정치사의 중요한 연결점.
OPEC 페르시아만 6개 회원국이 원유 공시가격을 독자적으로 인상. 기준 유종인 아라비안 라이트의 공시가격이 배럴당 약 3달러에서 5.119달러로 상승.
다음 날 아랍 산유국의 감산 결정과 구별되는 가격 조치로, 산유국 정부의 가격 결정권 확대를 보여주는 전환점.
1973년 10월 16일 베트남 휴전 협상 당사자들을 공동 선정한 결정이 수상 거부와 위원회 내부의 공개적 분열로 이어짐. 레득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을 거부했고, 결정에 반대한 위원 2명은 사임하여 노르웨이 의회가 10월 18일 사임서를 접수함.
위원회 다수는 불완전하더라도 평화로 나아가는 협상을 격려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전쟁 수행 책임이 있는 정치인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이 타당한지 강한 비판이 제기됨. 수상자 명단을 넘어, 실현된 평화와 진행 중인 협상 중 무엇을 평가할지 및 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함께 쟁점이 된 사건.
동생 최종선과 함께 남산 분청사에 출석한 뒤 영장 없이 구금된 채 조사를 받기 시작한 날. 훗날 서울고등법원이 불법구금으로 판단한 출석·조사 경위.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회원국들의 석유장관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이후 매달 최소 5%씩 추가 감산하기로 결정.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 회복을 요구하며 석유 공급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조치.
특정 국가로의 수출을 막는 금수와 전체 생산량을 낮추는 감산은 서로 다른 수단으로, 이후 병행되며 석유 수입국의 공급 불안을 확대.
서울 장충동 남산 자락에 신축한 국립극장이 개관함. 넓어진 무대와 이동·회전 장치 등을 갖추어 대규모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됨. 부민관과 대구, 명동을 거친 국립극장의 활동 거점이 오늘날의 위치로 옮겨짐.
사우디아라비아가 10월 18일 원유 생산을 우선 10% 줄이고 이후 추가 감산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함. 이는 하루 전 아랍 산유국들의 공동 감산 결정과 연결된 후속 조치로,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의 공급 압박을 강화함. 석유파동의 일반적인 시작일인 10월 17일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별 감산 발표일 10월 18일은 구분됨.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남산 분청사에서 불법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 판결문상 시점은 10월 18일 자정 무렵 또는 19일 새벽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통상 기일인 19일로 표시. 구체적 사망 경로의 미확정과 별도로 고문 등에 의한 사망의 국가책임은 인정.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에 반발한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으로의 석유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에 착수. 감산에 더해 특정 수입국을 겨냥한 금수가 진행되면서 공급 불안과 국제유가 상승 압력을 확대.
금수의 중심은 아랍 산유국들이었으며, 비아랍 산유국도 포함하는 OPEC 전체의 일률적 금수 결정과는 구별되는 조치.
사망 직후 관련 수사 부서에 대해 내부 감찰을 실시한 날. 조사 과정의 가혹행위 정황이 내부 기록에 남았으나 당시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훗날 의문사위 조사에서 검토된 자료.
사망 뒤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등 조작 서류를 붙여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사건을 서울지방검찰청에 넘긴 날. 사후 서류 조작은 2006년 국가배상 판결이 인정한 사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4차 중동전쟁 중 결의 제338호를 채택해 교전국에 12시간 안의 군사행동 중단과 정전을 요구함. 1967년 결의 제242호의 이행과 관련 당사자 간 평화협상 개시도 촉구함. 중동전쟁 종료와 이후 국제적 평화협상 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외교적 전환점이 됨.
중앙정보부가 기자회견에서 최종길이 간첩 혐의를 자백한 뒤 투신했다고 발표한 날. 이는 당시 기관의 주장이며, 법원은 그러한 자백과 간첩임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고 판단.
국립극장의 장충동 이전에 따라 명동 건물이 산하 예술극장으로 운영됨. 국립극장의 중심 기능은 남산으로 이동했으나 명동 건물은 민간 매각 전까지 공연 공간으로 남았음.
북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6·23 선언 등을 문제 삼아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 이로써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이어지던 대화 국면이 중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