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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기록 1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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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국무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여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에게 유감의 뜻과 재발 방지를 전달, 같은 내용의 대통령 친서 전달. 이 사과 방문을 통해 한일 양국은 사건을 더 이상 사법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김대중의 해외 체류 중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사건을 정치적으로 봉합.

박정희 대통령 친서 내용

다나까 가꾸에이 日 총리에게

각하, 본인은 각하의 탁월하신 영도하에 일본 국민이 일익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 대하여 경의와 경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한일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인방으로서 과거의 모든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롭고 꾸준한 노력으로 양국 국민 사이의 우의가 돈독해지고 양국 정부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상호 유익한 협력관계가 날로 증진되고 있음은 매우 기쁜 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의외에도 김대중 사건이 야기되어 일시적이나마 양국 사이에 물의가 생긴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며 본인은 각하와 귀 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양국간의 기본적이고도 전통적인 선린우호관계에 어떠한 균열도 초래되어서는 안될 줄 생각합니다. 또 양국 간에서 다시는 유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상호 신뢰와 우호를 증진하는데 더욱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일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에 비추어 본인은 김종필 국무총리를 파견하여 한일 양국의 관계 증진을 위한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기회로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선린 우호 협력관계가 우리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일층 발전되어 나갈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각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다나까 수상 친서

김대중씨 사건으로 일한 양국간의 우호관계에 한때 분규가 발생된 것은 실로 유감된 일이었읍니다. 일본정부로서는 이 사건에 이치에 맞고 내외의 납득을 받을 수 있는 해결을 희구하여 왔음은 승찰 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금번 한국측이 소요되는 제 조치를 취하신 외에 특히 김 국무총리를 아국에 파견하시어 대통령 스스로의 유감의 뜻을 친서로써 우호관계 증진에의 기대를 말씀하시어 오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로써 본 사건은 외교적인 결착을 짓고, 일한관계에 공정하고도 순조로운 발전이라는 양국민 공통의 염원이 달성되는 것을 절실히 기원합니다.

총무처가 에너지소비절약운동 실천요강을 마련해 관계 기관에 통보. 석유 수급 불안에 대응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한국 정부의 행정적 대응.

국가기록원에 보존된 「에너지소비절약운동 실천요강 통보(총무처)」로 확인되는 조치.

버림받은 여성 분례가 대장장이와 만난 뒤 그의 전처 소생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임권택의 드라마. 잠깐의 안식이 끝난 뒤에도 타인의 아이들을 양육하는 노동과 모성, 끈질긴 생존을 중심에 놓은 작품. 나한봉 각본, 서정민 촬영, 삼영필림 제작. 임권택의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전환점으로 자주 거론되는 1973년 영화로, 민중의 삶과 모성에 대한 관심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

문세광이 권총을 구하려고 홍콩을 방문했으나 확보에는 실패.

일본 경찰청의 1975년 경찰백서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3년 11월 권총을 구하려고 홍콩을 방문했으나 확보에는 실패. 경찰백서에 기록된 이 행적은 이듬해 일본에서 권총을 훔치기 전의 범행 준비 과정에 해당함.

동생 최종선이 병원에 입원한 뒤 사망 전후 정황을 기록하고 사제에게 맡긴 시기. 훗날 진상규명을 뒷받침한 기록으로, 작성 시기는 월 단위로 표시.

1973년 말 《용쟁호투》가 서울 국제극장과 아세아극장의 연말연시 상영작으로 편성됨. 당시 보도는 이소룡의 대표작이 곧 국내에 소개된다고 전하며 미국·유럽에서 거둔 흥행을 함께 조명함. 한국영상자료원이 1973년 한국 개봉 포스터를 소장한 작품.

용쟁호투

테헤란에서 열린 OPEC 페르시아만 6개국 각료회의가 기준 유종 아라비안 라이트의 공시가격을 배럴당 11.651달러로 정하고 1974년 1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합의. 10월 초 약 3달러와 비교하면 약 네 배 수준.

산유국 정부의 배럴당 수입 몫을 7달러로 정한 데 따른 공시가격으로, 모든 원유 거래가 이 가격으로 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님.

1973년 석유 파동

박정희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해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을 "사회혼란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유신체제를 부정하는 일체의 불온 언동과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경고함. 앞서 12월 26일 김종필 총리의 방송 경고, 12월 28일 문공부의 강경 방침에 이은 정권 최고위의 직접 압박으로, 서명운동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하는 신호.

박정희

1973년 12월 미 국방부의 국방획득검토위원회(DSARC)가 공군에 나브스타 GPS 개발 착수를 승인. 해군의 타이메이션과 공군의 621B 등 분산되어 있던 위성 항법 연구를 하나의 통합 프로그램으로 결집한 결정. 브래드퍼드 파킨슨이 이끈 합동 프로그램 사무소가 신호 구조·궤도 예측·위성 시계 방식을 종합해 실제 개발에 착수.

GPS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에 입사해 온라인 사무 시스템 POLOS 개발팀에 합류. 앨런 케이가 이끄는 학습연구그룹과 스몰토크 개발에도 참여하며 문서 편집기와 프로그래밍 도구의 사용성을 연구.

제프 룰리프슨과 함께 작성한 백서 OGDEN에서 편집할 대상을 먼저 선택한 뒤 명령을 내리는 방식과 잘라내기·붙여넣기를 제안. 바버라 그로스의 도움을 받아 사용자에게 빈 화면을 보여 주고 원하는 조작을 묻는 연구를 진행하며, 편집 모드를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을 관찰.

보안사령관 강창성이 윤필용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존재와 회원들의 인맥이 드러남.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정치적 위기에 놓였으나 조직 전체가 해체되지는 않았으며, 전두환 등 핵심 인물들의 군 경력도 이어짐.

전두환은 이후 대통령 경호 관련 보직과 제1보병사단장을 거쳐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에 오름. 하나회가 박정희 정권 아래 군의 요직에 진출하고 후일 신군부의 기반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정치적 위기.

전두환

뉴욕 줄리아드 스쿨 연극 과정에 입학함. 동기 크리스토퍼 리브와 함께 존 하우스먼이 지도하는 고급 과정에 선발되어 연기 훈련을 받음. 두 사람은 이후에도 오랜 우정을 유지함.

로빈 윌리엄스

독일 역사학자 아르노 페터스가 대륙의 상대 면적을 보존하는 ‘피터스 세계지도’를 공개하고, 메르카토르 도법이 유럽과 북미를 과대하게 보인다고 비판함. 지도 투영을 제3세계의 재현과 정치적 인식 문제로 대중화했으나, 제임스 갈의 선행 도법과의 동일성 및 형태 왜곡·우월성 주장을 둘러싼 장기 논쟁 촉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