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tone
김복동,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첫 공개 증언
오랜 침묵을 깨고 1992년 자신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힘.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에게 당한 참상을 증언하며 국제 사회에 문제를 알림. 이 무렵부터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한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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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침묵을 깨고 1992년 자신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힘.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에게 당한 참상을 증언하며 국제 사회에 문제를 알림. 이 무렵부터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한 전환점.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KITSAT-1)는 1992년 8월 11일(한국시간 밤 10시)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4호 발사체에 실려 성공적으로 우주 궤도에 진입.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됨.
참고로 당초 계획된 임무 기간 5년을 넘어 2004년까지 12년간 정상 작동.
전민련 활동과 관련한 약 2년 3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김근태가 홍성교도소에서 만기 출옥함. 이후 다시 재야 민주화운동과 정치개혁 활동에 참여함.
1992년 8월 20일 노태우 정부 시절 선경그룹이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됨. 그러나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을 들어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 등이 '사돈 특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함. 거센 여론에 밀려 선경은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 뒷날 제2이동통신 신규 진입 대신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인수로 방향을 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