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에서 출생. 생일은 일부 약력에 7월 12일로 기재되지만 공주시 자료에서는 음력 7월 12일로 소개되는 등 음력·양력 구분에 차이가 있는 날짜 정보.
완창 공연을 대중적인 무대로 정착시키고, 잊힌 판소리의 재창작과 새로운 소재의 판소리로 활동 범위를 넓힌 대한민국의 명창. 호는 인당(忍堂).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이자 제2대 국립창극단장.
충남 공주 출생으로, 청소년기에 협률사 공연을 접한 뒤 소리꾼의 길에 입문. 김창진·정정렬·유성준·조학진·박지홍 등 여러 명창에게 배우며 서로 다른 소리의 특징을 접한 이력. 배운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자신의 목과 공연 상황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형성한 예술세계.
해방 전후에는 창극단과 여성국극단 등의 공연 현장에서 노래뿐 아니라 작곡·편곡과 반주에도 참여. 1962년 국립국악원에 들어간 뒤 안정적으로 수련과 공연을 이어가며, 국악원에서 판소리 교육과 민속악의 비중을 넓힌 활동.
1968년 9월 30일 《흥보가》를 약 다섯 시간 동안 부른 공개 공연이 중요한 전환점. 이후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로 이어진 장시간 연창을 통해, 유명한 대목만 듣는 무대와 구별되는 한 바탕 전체의 감상 경험을 널리 알린 인물.
《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숙영낭자전》처럼 소리 전승이 끊긴 작품의 사설에 새 가락을 붙이는 작업도 병행. 옛 소리를 그대로 되찾았다는 의미의 복제가 아니라,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부를 수 있게 만든 복원·재창작. 성서 이야기와 이순신의 생애를 판소리로 옮기며 소재의 확장도 시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국립창극단장으로 재임하며 도창과 작창, 창편곡 및 단체 운영에 참여. 독창자의 완창 무대뿐 아니라 여러 배우가 함께하는 창극의 제작과 발전에도 관여한 경력.
즉흥적인 아니리와 재담, 청중과 주고받는 호흡이 두드러진 공연 스타일. 방송과 광고를 통해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에게도 알려졌으며, 엄격한 가락의 계승과 현장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은 소리꾼.
1998년 공주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열어 제자 교육에 힘썼고, 팔순 이후에도 장시간 공연을 계속한 말년. 2003년 사망 후 금관문화훈장 추서. 공연 녹음과 음반, 전수관 활동을 통해 이어지는 예술적 유산.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박동진, 조향창극단 활동
조향창극단 단원으로 거창·합천 등지에서 위문 공연에 참여. 해방 이후 이동 공연단을 중심으로 이어간 초기 무대 활동.
박동진, 정훈공작대 공연 참여
한국전쟁 중 국민방위군 산하 정훈공작대에서 장병 대상 공연에 참여. 전쟁기의 창극·위문 공연 현장에서 이어간 소리 활동.
박동진, 여덟 시간 《춘향가》 완창
전년 《흥보가》에 이어 《춘향가》를 약 여덟 시간 동안 완창. 긴 서사를 한 무대에서 듣는 공연 방식을 확장한 연창.
박동진, 성서 판소리 《구주 성탄》 발표
예수의 탄생을 소재로 한 《구주 성탄》 발표. 전통 다섯 바탕 밖의 이야기에 판소리의 음악과 서술 방식을 적용한 성서 판소리 작업의 한 갈래.
박동진, 여섯 시간 《심청가》 완창
《심청가》를 약 여섯 시간에 걸쳐 완창. 《흥보가》·《춘향가》에 이은 장시간 공연으로 완창 무대를 이어간 활동.
박동진, 《변강쇠타령》 재창작 공연
전승이 끊겼던 《변강쇠타령》의 사설을 토대로 새 소리를 구성하여 공연. 기존 이야기에 다시 음악을 붙여 연행 가능한 작품으로 만든 작업.
박동진, 일곱 시간 《적벽가》 완창
《적벽가》를 약 일곱 시간 동안 완창. 훗날 해당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는 소리 세계를 장시간 무대로 선보인 공연.
박동진, 《수궁가》 완창
《수궁가》 완창으로 전승 다섯 바탕의 연속적인 완창 활동을 전개. 국립국악원 소장 《제5회 박동진 판소리 연창회》 녹음의 제작 연도 및 국악아카이브 설명에 따라 1971년으로 기록.
박동진, 《배비장타령》 복원 발표
소리 전승이 끊긴 《배비장타령》을 재창작하여 발표. 전승 다섯 바탕에 한정하지 않고 판소리 레퍼토리를 넓힌 시도.
박동진, 《적벽가》 예능보유자 인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인정. 공연 활동에 더하여 해당 소리의 보존과 전승을 맡게 된 전환점.
박동진, 《숙영낭자전》 공연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명창판소리 《숙영낭자전》 공연. 실전 판소리 재창작을 관객 앞에 선보인 무대로 공식 극장 연혁에 수록.
박동진, 은관문화훈장 수훈
전통음악 분야에서의 활동으로 은관문화훈장 수훈.
《인간문화재 박동진 판소리 대전집》 발매
SKC에서 18장짜리 CD 전집 발매. 장시간 공연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음반으로 남긴 대표적 녹음 유산.
박동진, 제3회 방일영국악상 수상
판소리 전승에 기여한 공로로 제3회 방일영국악상 수상. 11월 당시 보도에서 수상자 선정과 시상 계획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
박동진, 노년의 《수궁가》 다섯 시간 완창
팔순을 넘긴 나이에 《수궁가》를 약 다섯 시간 동안 완창. 당일 방송 보도에 남은 말년의 장시간 공연.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개관
고향 공주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개관. 생활 거점을 옮겨 제자 교육과 판소리 전승에 집중할 기반 마련.
박동진 사망
공주 판소리 전수관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정부가 국악 발전과 보급에 대한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결정.
박동진, 제2대 국립창극단장 취임
제2대 국립창극단장 취임. 국립창극단 공식 역대 단체장 기록의 재임기간은 1975년 1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로, 일부 약력의 1973년 취임 표기와 구분.
박동진 창편곡 《춘향전》 공연
국립창극단이 이원경 각색·연출, 박동진 창편곡의 《춘향전》을 4월 17일까지 공연. 소리꾼으로서의 역량을 창극의 음악 구성에 적용한 작업.
박동진 단장 재임 중 허규에게 연출을 맡긴 《심청가》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3월 27일까지 공연. 창극을 현대 음악극으로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연출 흐름과 연결된 무대.
박동진, 국립국악원 근무 시작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근무하기 시작. 판소리와 반주를 맡고 이후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며, 민속악이 국악원에서 자리 잡는 과정에 기여.
박동진, 국악사양성소 판소리 교사 발령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판소리 교사로 발령. 전문 교육기관에서 소리를 전수하며 후학 양성과 판소리 교육의 제도화에 참여.
박동진, 다섯 시간 《흥보가》 완창
국립국악원과 유엔군총사령부방송(VUNC)이 공동 주최한 공개녹음 공연에서 박동진이 《흥보가》를 약 300분 동안 연행. 짧은 대목 중심의 무대와 구별되는 장시간 완창을 널리 알리고, 이후 연속적인 다섯 바탕 완창으로 이어진 전환점.
국립극장, 신재효 100주기 완창 공연
신재효 100주기를 기념하여 박동진·성창순·조통달·오정숙이 나흘에 걸쳐 완창 공연을 펼침. 짧은 대목을 골라 듣는 방식과 달리 한 바탕 전체의 서사와 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무대였음. 이듬해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를 상설화하는 출발점이 됨.
그 외 사실들 4건
트리비아
아니리는 판소리에서 노래 사이를 말로 풀어가는 부분. 박동진의 공연은 즉흥적인 재담과 청중의 반응을 활용하는 방식이 특히 두드러진 사례.
공주시 자료에서 음력 7월 12일로 소개되는 박동진의 생일. 음력·양력 구분 없이 7월 12일로 표기된 일부 약력과 차이를 보이는 날짜 정보.
소리 전승이 끊긴 판소리의 복원은 옛 음원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설에 새 가락과 표현을 붙인 재창작을 포함하는 작업.
기록
국립창극단 공식 기록에 남은 단장 재임기간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예능보유자 인정 연도인 1973년과 구별해야 하는 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