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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참의원 의장단이 안정적인 황위 계승과 황족 수 확보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 방향을 담은 국회 합의 초안을 정부에 전달. 여성 황족이 평민과 결혼한 뒤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하도록 하고, 1947년 황적을 이탈한 옛 방계 황족의 남계 남성을 양자로 받아들이는 방안 포함.

그러나 여성 황족의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황족 신분과 계승권을 부여하지 않고, 황위 계승 자격도 남계 남성에게만 한정하는 현행 원칙 유지. 나루히토 천황의 외동딸 아이코 내친왕을 비롯한 여성 황족의 천황 즉위 가능성을 배제한 채 남성 계승자를 외부에서 충원하는 방향이 제시되면서, 여성 천황을 지지하는 여론과 괴리된다는 비판 확산

알렉산더 해슬럼·욜란다 예튼·톰 포스트메스·캐서린 해슬럼이 《응용심리학》의 「사회 정체성, 건강과 웰빙」 특집호를 통해 사회 정체성 접근의 건강 연구 의제를 종합함. 집단 소속과 사회적 동일시가 사회적 지지의 제공과 수용, 스트레스 대처, 건강 행동과 심리적 안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흐름 제시. 사회집단이 편견과 갈등의 원천일 뿐 아니라 건강과 회복을 돕는 심리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부각하며 이후 ‘사회적 치유’ 연구의 기반 확대.

사회 정체성 접근

스티븐 라이허가 1988년 런던에서 학생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이른바 ‘웨스트민스터 전투’를 분석해 사회 정체성 군중 모델을 확장함. 군중의 정체성과 행동이 사건 이전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찰 등 외부 집단과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변화하고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과정적 설명 제시. 경찰이 다양한 참가자를 하나의 위험한 집단으로 취급하는 과정이 참가자 사이의 공통 정체성과 연대를 강화하고 집단적 대립을 확산할 수 있음을 분석하며 확장된 사회 정체성 군중 모델의 토대 마련.

사회 정체성 접근

스티븐 라이허·러셀 스피어스·톰 포스트메스가 「몰개성화 현상의 사회 정체성 모델」에서 SIDE 모델을 체계적으로 제시함. 익명성과 집단 몰입이 개인의 자아와 자기통제 상실을 일으킨다는 전통적 몰개성화 이론을 비판하고, 개인 정체성보다 사회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만들어 집단 규범에 따른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는 대안적 설명 제시. 군중 행동과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에서 나타나는 익명성의 효과를 사회 정체성과 자기범주화 과정으로 설명하는 연구 틀 확립.

사회 정체성 접근

앙리 타지펠이 논문 「사회 정체성과 집단 간 행동」에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을 통해 획득하는 자기 개념을 집단 간 행동의 핵심 요인으로 제시함. 집단 소속이 개인에게 정서적·가치적 의미를 제공하며, 사람들이 자기 집단을 다른 집단과 비교하고 긍정적으로 구별하려는 경향이 집단 간 평가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 전개. 최소집단 실험에서 확인된 내집단 편애를 사회 정체성 개념으로 설명하며 1979년 사회 정체성 이론 정식화로 이어지는 이론적 연결 고리 마련.

사회 정체성 접근

스티븐 헤인스와 마이클 호그가 집단 전형성과 리더 고정관념이 리더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고 자기범주화에 기초한 리더십 모델을 제시함. 특정 집단 정체성이 두드러진 상황에서는 집단의 규범과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전형적 구성원이 더 효과적인 리더로 지각될 수 있다는 관점 제시. 자기범주화 이론을 집단 내 영향력과 리더십 연구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이후 사회 정체성 리더십 연구의 기반 마련.

사회 정체성 접근

알렉산더 해슬럼·스티븐 라이허·마이클 플라토우가 리더십을 개인의 고정된 자질이 아니라 공유된 사회 정체성을 형성하고 대표하는 집단 과정으로 설명한 《리더십의 새로운 심리학: 정체성, 영향력과 권력》을 출간함. 효과적인 리더가 집단의 전형적인 구성원으로 인식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우리’의 의미를 창출하고 현실에 구현해야 한다는 관점 체계화. 사회 정체성 접근을 리더십과 조직 연구에 종합적으로 적용한 대표 저작.

사회 정체성 접근

존 터너·마이클 호그·페넬로피 오크스·스티븐 라이허·마거릿 웨더럴이 저서 《사회집단의 재발견: 자기범주화 이론》을 배질 블랙웰에서 출간함. 자기 범주의 위계적 수준과 맥락적 현저성, 메타대비 원리, 집단 원형, 탈개인화와 자기고정관념화 등 자기범주화 이론의 주요 개념을 종합적으로 제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집단 구성원으로 지각하고 집단 규범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며, 사회 정체성 이론과 함께 사회 정체성 접근을 구성하는 두 번째 이론적 축 확립.

사회 정체성 접근

존 터너가 편저 《집단 과정의 발전: 이론과 연구》에 수록된 장 「사회적 범주화와 자기 개념: 집단 행동의 사회인지 이론」에서 자기범주화 이론의 초기 구상을 체계적으로 정식화함. 개인이 자신을 고유한 개인,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인간이라는 상위 범주의 구성원 등 서로 다른 추상 수준에서 범주화할 수 있으며, 비교 맥락에 따라 특정 자기 범주가 두드러진다는 관점 제시. 집단 행동을 고정된 개인적 특성이나 자아 상실이 아니라 사회적 자기 범주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지각·행동의 변화로 설명하는 이론적 틀 마련.

사회 정체성 접근

스티븐 라이허가 1980년 영국 브리스틀 세인트폴에서 발생한 폭동을 분석해 군중 행동을 공유된 사회 정체성과 집단 규범에 따라 설명하는 모델을 제시함. 참가자들이 자신을 억압받는 세인트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했으며, 공격 대상도 경찰·금융기관·부의 상징처럼 그 정체성 안에서 적대적으로 규정된 대상에 집중되었음을 분석함. 군중이 개인적 자아를 잃고 무차별적으로 행동한다는 고전적 군중론과 몰개성화 설명을 비판하고, 군중 행동의 선택성과 한계를 사회 정체성으로 설명하는 연구 방향 확립.

사회 정체성 접근

앙리 타지펠과 존 터너가 「집단 간 갈등의 통합 이론」에서 사회 정체성 이론의 기본 틀을 제시함. 개인이 자신을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범주화하고 집단 간 비교를 통해 긍정적인 사회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관점에서 최소집단 실험의 내집단 편애와 현실의 집단 간 행동을 설명함. 집단 간 지위 차이가 불안정하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인식될 때 개인 이동·사회적 창의성·사회적 경쟁과 같은 대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론적 체계 정립.

사회 정체성 접근

앙리 타지펠·마이클 빌리그·로버트 번디·클로드 플라망이 참가자들을 점의 수 추정이나 그림 선호처럼 사소한 기준에 따라 최소집단으로 분류하고 익명의 보상 배분 행동을 관찰함. 집단 사이에 기존의 적대감이나 경쟁,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고 참가자가 자신에게 보상을 줄 수도 없는 조건에서도 자기 집단 구성원에게 더 유리하게 보상을 배분하는 내집단 편애 확인. 사회적 범주화만으로도 집단 간 차별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사회 정체성 이론 형성의 핵심 실증적 토대 마련.

사회 정체성 접근

앙리 타지펠과 앨런 윌크스가 분류 체계가 양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선분 길이 판단 실험으로 검증함. 길이가 단계적으로 달라지는 선분을 물리적 크기와 대응하는 두 범주로 구분했을 때,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한 선분 사이의 차이를 범주가 없는 조건보다 더 크게 판단하는 현상 확인. 범주 경계가 연속적인 자극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범주화의 강조 효과를 보여준 연구로, 이후 사회적 범주화와 집단 지각 연구로 이어지는 인지적 토대 형성.

사회 정체성 접근

일제가 수양동우회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면서 이광수도 1937년 6월 7일 체포·수감됨. 검거는 이후 서울 본부와 평양·선천·안악 등 각지의 회원으로 확대돼 모두 181명이 붙잡힘. 수양동우회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이광수의 장기적인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사건.

이광수 (춘원)

이광수가 『개벽』 1922년 5월호에 장편 논설 「민족개조론」을 발표함. 조선 민족의 쇠퇴 원인을 구성원들의 도덕과 성격에서 찾고, 인격 수양·교육·경제적 자립·사회봉사를 통한 전면적 개조를 주장함. 독립보다 민족성 개조와 실력양성을 앞세운 논리로 지식인과 청년층의 강한 비판을 불러온 논설.

이광수 (춘원)

이광수가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지원을 권유하는 활동을 전개함. 도쿄 메이지대학 강당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 등에 참석하고 일본 각지의 유학생을 상대로 전쟁 참여를 독려함. 조선 청년을 일본군에 동원하려 한 이광수의 전시 친일 협력을 대표하는 활동.

이광수 (춘원)

경성 부민관에서 문인 약 250명이 참여한 조선문인협회 창립식이 열리고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광수가 회장에 선출됨. 이광수는 취임사에서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협회의 목적으로 제시함. 이후 전선의 일본군을 위한 위문문 모집과 문예 행사 등 문단 차원의 전쟁 협력을 이끈 친일 문인단체의 출범.

이광수 (춘원)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병보석 상태에 있던 이광수가 예심 과정에서 전향을 선언함. 주요한과 함께 전향 의사를 밝히고 조선신궁을 참배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전향자 중심의 시국유지원탁회의에 참석함.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경력에서 이탈해 일제의 황민화·전쟁 협력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전환점.

이광수 (춘원)

서울의 수양동맹회와 평양의 동우구락부가 통합해 수양동우회를 결성하고 이광수도 발족에 참여함. 두 단체 모두 안창호가 창설한 흥사단의 국내 조직 성격을 지닌 단체로, 인격 수양과 민족문화 건설을 통한 실력양성을 표방함. 이후 기관지 『동광』을 발행하며 교육·계몽 활동을 전개한 조직의 출범.

이광수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 1면에 「민족적 경륜」을 5회에 걸쳐 연재함. 정치·산업·교육 분야의 결사를 조직하고 일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민족의 당면한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자고 주장함.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타협적 자치론이라는 비판과 동아일보 불매운동을 불러왔으며, 이광수가 동아일보사를 떠나는 계기가 된 논설.

이광수 (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