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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I가 한국 증시를 자사 신흥시장(Emerging Markets) 지수에 편입함. 이를 통해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투자자가 추종하는 신흥시장 벤치마크의 구성 시장으로 자리잡음. 이후 한국은 MSCI 신흥시장 지수 내 주요 비중 국가가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선진시장(DM) 승격 여부가 자본시장 제도의 핵심 과제로 다뤄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저널 오브 리스크 앤드 언서튼티》에 「전망 이론의 진전: 불확실성의 누적 표현」을 발표하며 누적전망이론을 제시함. 1979년 원전망이론의 결과별 분리형 의사결정 가중치를 결과의 순위와 누적확률에 기반한 가중치로 대체해 확률우월성 위반 문제를 완화함. 이득과 손실에 서로 다른 확률가중함수를 허용하고, 임의의 수의 결과를 가진 위험 및 불확실성 아래의 선택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함. 이후 누적전망이론은 전망 이론의 대표적 정교화 모형이자 행동경제학·금융·보험 분야 응용 연구의 주요 기준 모형으로 자리 잡음.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인터넷상에서 도발적이거나 불성실한 메시지를 올려 타인의 반응을 유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troll’을 1992년부터의 용례로 제시함. ‘trolling’ 명사 역시 가장 이른 증거를 1992년 유즈넷 뉴스그룹 alt.folklore.urban의 용례로 기록함.
이는 트롤링이 반드시 1992년에 처음 생겼다는 뜻이라기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확인·채택한 인터넷 의미의 가장 이른 문헌 증거가 그 시기라는 뜻임. 1980년대 BBS나 초기 유즈넷에서 유사한 관행이 있었을 가능성은 거론되지만, 이 이벤트는 사전 편찬 자료상 검증된 초기 용례가 1992년으로 정착한 지점을 의미함.
낮에는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탠퍼드대학교 야간 과정을 다니며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함. 일과 학업, 두 자녀 육아를 함께 감당한 시기로, 이듬해 엔비디아 창업의 기술적 토대가 됨.
칸 영화제에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상을 수상하며 작품 하나가 아니라 영화 경력 전체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받기 시작함. 1990년대 키아로스타미가 유럽 영화제 네트워크 안에서 세계적 작가로 자리 잡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
1992년 차관급이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를 국무위원급으로 격상하고 그에 맞춰 기구를 개편함. 사무총장의 위상이 높아지고 선거관리 행정 조직이 확대됨.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 제고와 선거관리 기능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알라딘 (Aladdin)》 미국 개봉. 아랍 설화와 페르시아·인도·남아시아의 건축·의상·이름을 가상의 왕국 아그라바에 혼합해 ‘동양적’ 판타지 공간을 구성한 작품.
주인공들은 미국식 억양과 상대적으로 서구적인 외모로, 상인과 경비병은 과장된 아랍 억양과 위협적인 외모로 묘사한 차이도 비판의 대상.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라비안 나이트형 오리엔탈리즘이 세계적으로 재생산된 사건.
1992년 10월 유즈넷 뉴스그룹 alt.folklore.urban에서 오늘날 인터넷 트롤링을 뜻하는 ‘trolling’의 초기 용례가 기록됨. 데이비드 에산은 10월 2일 글에서 ‘trolling’을 언급했고, 스콧 크로마는 10월 9일 ‘Trolling for Newbies’라는 제목의 글을 올림.
당시의 트롤링은 낯선 이용자를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행위라기보다, 오래된 오해나 반복된 주제를 일부러 꺼내 신참의 진지한 반응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내부의 장난에 가까웠음. 낚싯줄에 미끼를 끌어 반응을 기다리는 낚시 기법 ‘trolling’의 비유에서 나온 표현으로, 훗날 적대적 도발과 온라인 괴롭힘까지 포괄하는 현대적 의미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됨.
1992년 발표한 정규 14집. 서태지와 아이들 등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며 가요계 지형이 급변하던 시기에 내놓은 음반. 대중음악의 흐름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활동을 이어 감.
1992년 8월 20일 노태우 정부 시절 선경그룹이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됨. 그러나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을 들어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 등이 '사돈 특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함. 거센 여론에 밀려 선경은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 뒷날 제2이동통신 신규 진입 대신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인수로 방향을 틀게 됨.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KITSAT-1)는 1992년 8월 11일(한국시간 밤 10시)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4호 발사체에 실려 성공적으로 우주 궤도에 진입.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한 국가가 됨.
- 위성 크기 및 무게: 가로 35.2cm, 세로 35.6cm, 높이 67cm의 육면체 / 48.6kg
- 궤도: 고도 1,300km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110분 소요)
- 임무: 지구 표면 촬영, 우주 방사선 측정 등의 통신·과학 실험을 수행
참고로 당초 계획된 임무 기간 5년을 넘어 2004년까지 12년간 정상 작동.
대한민국의 모델 김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