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케냐를 시작으로 아프리카·동남아·중남미 신흥시장에 통신망 공급 개시. 서방 공급사가 진출하지 않았거나 비용이 높던 시장을 집중 공략. 2005년경 아프리카의 주요 통신장비 공급사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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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자체 개발한 디지털 전화교환기 C&C08 출시. 재판매에서 연구개발 중심으로 전환한 첫 성과로, 중국 내 베스트셀러가 되며 위상 확보. 루슨트·지멘스·알카텔 등 외국 공급사와 본격 경쟁하는 발판 마련.
8월경 화웨이가 농촌통신 기술·시장 세미나에서 C&C08을 시장에 처음 공개한 것으로 보임.
미국 현지시간 기준 22일,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화상 브리핑에서 'LG유플러스 같은 기업은 신뢰할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업체로 옮기라'며 회사를 콕 집어 압박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는 SK텔레콤·KT를 '깨끗한 기업'으로 거명. 미·중 기술패권 다툼 한복판에 한국 통신사가 직접 호명된 사건.
런정페이가 투자자 5명과 함께 중국 선전 경제특구에서 약 2만 1천 위안(약 5천 달러)으로 화웨이 테크놀로지를 설립함. 홍콩에서 수입한 전화교환기(PBX)를 호텔·중소기업에 재판매하는 사업으로 출발. 덩샤오핑 개혁개방기 선전에서 등장한 첫 민간 기술기업 중 하나.
각 투자자는 3500위안씩, 총 2만1000위안의 자본금을 출자한 것으로 전해짐. 화웨이 공식 자료는 설립 연도만 1987년으로 밝히지만, 에바 더우의 연구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설립일을 9월 15일로 제시함.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많은 국민이 함께 읽고 3.1운동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취지에서 100년 전에 쓰여진 「3.1독립선언서」를 각계의 감수를 거쳐 현대 말로 풀어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펴냄.
문화재청이 2016년 10월 20일 기미독립선언서 관련 문서를 국가등록문화재 제664호로 지정함.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전국적 만세운동의 확산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음. 한국 근대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기록 문헌으로 보존·관리되는 계기.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 앞에서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함. 낭독이 끝나자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울의 만세시위가 시작됨. 이 시위를 신호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진 3·1운동의 출발점.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계가 기독교의 이승훈, 불교의 한용운 등과 손잡아 종교계 연합 전선을 구성함. 천도교 15인·기독교 16인·불교 2인 등 모두 33인이 민족대표로 서명하기로 하고 손병희를 총대표로 추대함. 유림 측의 참여 교섭은 시간이 촉박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함.
천도교 측 최린의 요청을 받은 최남선이 독립선언서 본문과 함께 파리강화회의 대표들에게 보내는 청원서, 일본 정부에 대한 통고문 등을 1919년 2월 20일 무렵 완성함. 당대의 이름난 문장가였으나 후환을 우려해 민족대표 명단에는 서명하지 않음. 선언서 끝에 붙은 공약 3장의 작성자를 두고는 최남선 단독설과 한용운 관여설이 함께 전해짐.
천도교가 경영하던 보성사 인쇄소에서 사장 이종일이 독립선언서 약 2만 1천 부를 비밀리에 인쇄함. 2월 27일 밤 급박하게 진행되었으며, 인쇄 도중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발각될 뻔한 위기를 넘김. 완성된 인쇄본은 2월 28일부터 3월 1일에 걸쳐 천도교·기독교·불교 조직과 학생들을 통해 전국으로 배포됨.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미 의회 연설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구상을 담은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함. 각 민족이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가 그 핵심 원칙의 하나로 제시됨. 식민지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명분으로 받아들여져 한국의 3·1운동을 비롯한 각지 독립운동을 자극한 사상적 배경.
전라남도 해남 양봉농가에서 수백만 마리의 꿀벌이 폐사하거나 사라진 사실 보도. 벌통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사례 확인.
유럽연합이 클로티아니딘, 이미다클로프리드, 티아메톡삼 등 3종의 야외 사용 금지를 결정. 꿀벌 위해성 논쟁이 정책 금지로 이어짐.
미국 꿀벌 군집 손실이 큰 사회적 이슈로 재부상. 꿀벌 감소가 식량 공급과 농업 생산성 문제로 다뤄짐.
유럽연합이 꿀벌에 위해 가능성이 제기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3종의 일부 야외 사용을 제한. 농약 규제와 꿀벌 보호 정책이 본격적으로 연결됨.
미국 연구진이 CCD 양상을 분석한 기술 연구 발표. 2006~2007년 겨울 미국의 관리 꿀벌 군집에서 대규모 손실 발생 확인.
펜실베이니아 양봉업자가 플로리다 월동 벌통에서 이상한 대량 손실을 보고. 이후 Colony Collapse Disorder, CCD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바로아응애가 미국 양봉 현장에서 확인되며 북미 꿀벌 건강 문제의 주요 변수로 부상. 꿀벌 바이러스 확산과 군집 약화에 관여.
아시아 안팎으로 이동한 서양꿀벌 군집을 통해 바로아응애가 서양꿀벌에 정착. 이후 세계 양봉업의 주요 위협으로 확산,
네덜란드 곤충학자 안토니 코넬리스 오우데만스가 동양꿀벌에 기생하는 바로아응애를 발견하고 네덜란드 레이덴 박물관의 학술지에 이 응애를 새로운 속과 종으로 발표. 훗날 서양꿀벌 대량 피해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됨.
- 학술지: Notes from the Leyden Museum 제24권 제4호 (Vol. 24, pp. 216–222)
- 최초 명칭: Varroa jacobsoni (발견자 에드워드 제이콥슨의 이름을 따서 명명)
- 논문 제목: On a New Genus and Species of Parasitic Ac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