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한인애국단 가입·의거 선서
1931년 12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제1호 단원으로 가입하고 안공근의 집에서 일왕 처단을 다짐하는 선서식을 거행함.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태극기 앞에서 촬영한 선서 기념사진이 남아 의열투쟁의 결의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전해짐. 이후 거사 자금과 수류탄을 지니고 도쿄로 향한 사쿠라다몬 의거의 직접적 준비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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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2월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제1호 단원으로 가입하고 안공근의 집에서 일왕 처단을 다짐하는 선서식을 거행함.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태극기 앞에서 촬영한 선서 기념사진이 남아 의열투쟁의 결의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전해짐. 이후 거사 자금과 수류탄을 지니고 도쿄로 향한 사쿠라다몬 의거의 직접적 준비 단계.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침체된 임시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의열투쟁 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함. 일제 주요 인물 처단을 목표로 단원을 모으고 거사를 준비한 특무 조직. 이듬해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이어지는 무장투쟁의 토대.
한국전쟁 때 불탄 광화문의 문루를 철근콘크리트로 재건하고 경복궁 남쪽에서 준공식을 거행함.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설치하여 도심의 정문 경관을 되살림.
다만 배치 기준을 옛 조선총독부 청사에 맞추면서 고종 대 위치와 근정전 중심축에서 어긋났으며, 전통 목조 구조도 회복하지 못함. 이 차이를 바로잡는 것이 2006년 시작한 재복원사업의 핵심 과제가 됨.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함. 월대의 남북 길이 48.7m·동서 너비 29.7m, 중앙 홍예문과 연결된 약 7m 너비의 어도 기초시설 등을 확인함.
계단이 경사로로 바뀌고 전차선로가 설치·복선화되면서 월대가 훼손된 단계도 밝혀냄. 발굴된 기초와 계단 흔적은 문헌·옛 사진과 함께 2023년 복원의 구체적 근거가 됨.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을 원래 자리에서 해체하고 동쪽 궁성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김. 1926년 해체와 이듬해 이건으로 이어진 과정으로, 광화문은 궁궐 중심축의 정문이라는 본래 위치를 잃게 됨. 주변 전차선로와 도로의 확장은 월대와 궁장 등 남쪽 경관의 훼손에도 영향을 줌.
8월 공개한 광화문 현판에서 균열이 드러난 뒤 문화재청이 현장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문가 대책자문회의를 개최함. 문화재청은 당시 소나무의 특성과 건조한 가을 날씨에 따른 수축·팽창을 원인으로 설명하면서 추가 조사를 예고함.
복원 직후 발생한 균열은 현판의 목재 건조와 제작·공정 관리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짐. 회의 당시의 원인 설명은 문화재청의 발표이며, 이후 자체 감사와 전문가 검토를 거쳐 현판 재제작이 결정됨.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져 있던 광화문이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피해를 입어 상부 목조 문루가 불타고 석축만 남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훼손에 이어 전쟁으로 다시 궁문의 모습을 잃은 사건. 남은 석축과 과거 도면·사진은 이후 복원의 바탕이 됨.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연세대학교에서 광화문 한글 현판 병기를 주제로 첫 ‘모두의 토론회’를 개최함. 사전 모집한 국민 200명과 전문가가 기존 한자 현판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함.
한글의 국가적 상징성과 시대의 가치를 더하자는 의견, 문화유산의 원형과 건축적 형상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섬. 의견을 정책 검토에 반영하기 위한 공론화 행사로, 한글 현판 설치 확정이나 실제 교체·설치를 뜻하는 사건은 아님.
《경복궁 영건일기》에 고종 대 중건공사 중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은 사실을 기록함. 다듬은 돌로 기단과 계단을 만들고 내부를 흙으로 채운 구조로, 문 앞에 왕실 의례와 행차를 위한 넓은 공간을 조성한 과정임. 이 월대는 일제강점기의 전차선로 설치와 도로화로 훼손되었다가 2023년 발굴·복원의 대상이 됨.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다시 만들기 위한 제작위원회 구성과 첫 회의 계획을 발표함.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한 뒤, 광화문의 상징성을 고려한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재제작하기로 한 후속 조치임. 전통건축·목재 조직·건조·수리 전문가가 목재 구입과 건조, 글씨 새김 등 제작 전반을 점검하도록 함.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광화문 앞 월대의 복원을 마치고 새 현판과 함께 공개함. ‘광화문 새길맞이’ 기념행사를 통해 궁문에서 육조거리로 이어지는 의례 공간을 다시 선보임.
현판은 고종 대 중건 때 임태영이 쓴 한자 글씨를 바탕으로 하되, 2010년의 흰 바탕·검은 글씨와 달리 검은 바탕에 도금한 금빛 글자를 적용함. 해치상도 전문가 검토를 거쳐 월대 앞쪽으로 옮겼으나, 이 위치를 조선시대 원위치의 정확한 재현으로 보아서는 안 됨.
문화재청이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을 열고 해체·복원에 착수함. 1968년 세운 철근콘크리트 문루를 해체하고 고종 대의 위치와 목조 건축 형식을 되찾는 사업임. 이후 발굴조사와 석축·문루 공사를 거쳐 2010년 공개로 이어짐.
고종 대의 위치와 목조 형식을 되살린 광화문을 광복절에 공개하고 현판 제막식을 거행함. 2006년 12월부터 진행한 복원으로 철근콘크리트 문루를 목조로 바꾸고,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추어 문의 위치를 바로잡음.
임태영의 옛 글씨를 바탕으로 제작한 한자 현판을 걸었으며, 용성문·협생문·수문장청 등 주변 건물과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어도도 함께 공개함. 당시 공개는 광화문 권역 복원의 한 단계로, 도로 아래에 남아 있던 월대 전체의 복원과는 구분됨.
세종이 집현전 수찬에게 경복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여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문, 셋째 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함. 근정문 앞 석교에도 영제라는 이름을 부여함.
한국닌텐도가 동작 인식 리모컨을 사용하는 가정용 게임기 Wii를 한국에 정식 발매. 본체 가격은 22만 원으로 책정되었으며, 《Wii 스포츠》와 《처음 만나는 Wii 팩》 등을 함께 선보여 버튼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도 몸짓으로 게임에 참여하도록 한 구성. 2007년 닌텐도 DS Lite에 이어 한국에서 현지 법인이 직접 판매하는 게임기 제품군을 거치형으로 확대한 계기.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학술지 《Science》에 「The Framing of Decisions and the Psychology of Choice」를 발표함. 동일한 결과를 이득이나 손실 가운데 어느 쪽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를 제시함.
대표적인 ‘아시아 질병 문제’에서 600명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 결과, ‘200명을 살린다’는 이득 프레임에서는 응답자의 72%가 확실한 선택을 택함. 반대로 같은 결과를 ‘400명이 죽는다’는 손실 프레임으로 제시하자 78%가 사망자가 없을 가능성이 포함된 위험한 선택을 택함. 이득 영역에서는 위험을 회피하지만 손실 영역에서는 확실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전망 이론의 예측을 보여주고, 표현 방식만으로 선호가 역전될 수 있음을 실증함.
1865년 시작한 고종 대 경복궁 중건을 통해 1867년 주요 전각과 출입 공간의 재건을 마무리함. 광화문은 궁성과 함께 이른 시기에 공사를 진행하여 1865년 상량하였으며, 그 앞에 월대를 조성함.
안쪽의 흥례문과 주변 행각도 다시 세워 금천과 영제교를 품은 마당을 구성하고,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의례 동선을 회복함. 이 중건 과정에서 중문의 이름을 홍례문에서 흥례문으로 바꿈.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성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안쪽 중문인 홍례문도 소실됨. 궁궐의 남쪽 출입·의례 공간이 함께 훼손된 사건으로, 이후 약 270년 동안 본격적인 중건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고종 대에 복구됨.
1993년 10월 21일 부룬디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멜키오르 은다다예 대통령이 살해됨. 정치적 위기는 대규모 민족 간 폭력으로 번지며 이후 부룬디 내전으로 이어진 사건.
1967년 10월 21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집회를 열고 펜타곤으로 행진. 일부 시위대와 군·경찰 사이에 대치와 충돌이 발생했으며, 미국 반전운동의 대표적 대중행동으로 기록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