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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피란에서 돌아온 선조가 월산대군 후손의 집을 임시 궁궐로 사용하기 시작함. 경복궁과 창덕궁 등 도성의 궁궐이 불탄 상황에서 국왕과 조정이 머물 곳을 마련한 조치. 정릉동 행궁으로 불린 이 공간이 오늘날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

덕수궁

제록스가 분당 40장, 시간당 2,400장의 복사가 가능한 2400을 발표함. 분당 7장이던 914보다 처리량을 크게 높여 한 장씩 문서를 복사하는 용도에서 대량 복제 작업으로 제로그래피의 활용 범위를 넓힘. 914 이후 제품 개발이 소형화와 함께 고속화 방향으로도 진행된 전환점.

Xerox 914

기존 감축 약속을 주요 오존층 파괴물질의 단계적 전폐 방향으로 강화하고, 추가 CFC와 사염화탄소·메틸클로로포름을 규제 체계에 편입한 합의. 개발도상국이 대체기술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재정기구와 기술이전 조항도 마련한 전환점. 런던 개정서는 1992년 8월 10일 발효했으며, 한국은 같은 해 12월 10일 가입한 경과.

한국이 오존층 보호를 위한 특정물질의 제조규제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제 규제에 참여할 국내 기반을 마련한 조치. 제조업 허가, 물질별 제조·수입 관리와 사용 합리화 등을 통해 생산·소비를 통제할 체계의 준비. 1992년 1월 1일부터 법령을 시행한 뒤 비엔나 협약과 몬트리올 의정서 가입으로 연결한 경과.

한국 정부가 냉매를 사용하는 제품을 온실효과가 낮은 물질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HFC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조치. 제품군별 전환 일정안, 냉매 사용·폐기 단계의 누출 관리, 회수·재생냉매 활용 확대 등을 묶어 생산·수입 총량 규제를 보완한 계획.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도록 제도와 산업 지원을 추진한다는 방향의 제시.

필요한 비준 요건을 충족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국제적으로 효력을 얻고 오존층 파괴물질 규제를 실제 이행하는 단계에 들어선 시점. 당사국들이 생산·소비 자료를 보고하고 물질별 제한을 국내 제도에 반영할 법적 기반의 작동. 처음부터 모든 CFC 사용을 즉시 금지한 조치가 아니라, 정해진 일정과 예외에 따라 규제를 강화해 나가는 체계의 출범.

일본에서 부품과 제작 공정을 검토한 후지제록스 914의 첫 일본산 기체가 완성됨. 미국 규격의 도면을 일본 규격에 맞추고, 습도 변화와 한자의 가는 획을 재현하는 문제를 해결한 결과임. 1963년 1월 이와쓰키광기에서 본격 생산이 시작되며 보통용지 복사기의 현지 제조와 임대 보급이 확대됨.

Xerox 914

대기 모형에서 얻은 월별·고도별 회복 패턴을 위성 관측과 비교하여, 오존층 파괴물질 감소에 따른 회복 신호를 자연적 기상 변동과 구분한 연구. 남극 오존층의 회복이 국제적인 화학물질 감축과 연결된다는 점을 높은 통계적 신뢰도로 뒷받침한 결과. 특정 해의 오존홀 크기만으로 의정서의 성패를 판단하기보다 장기 관측으로 정책 효과를 평가할 근거의 강화.

일본의 압력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고 순종이 뒤를 이은 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게 됨. 덕수는 고종이 덕을 누리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의 궁호.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긴 뒤 이곳은 대한제국의 중심 황궁에서 퇴위한 고종의 거처로 성격이 바뀜.

덕수궁

대화재로 훼손된 경운궁의 주요 전각을 다시 짓고 궁궐 체계를 정비함. 중화전은 화재 이전의 중층 건물보다 규모를 줄인 단층 형태로 재건되었으며, 동쪽의 대안문을 수리하고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꿈. 대한문이 정문 역할을 맡으면서 궁궐의 출입 방향과 중심 동선에도 변화가 생김.

대한제국 황궁의 공식 의례를 치를 중화전이 새로 건립됨. 기존 즉조당에 중화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두 층 높이의 지붕을 갖춘 정전을 세워 황제의 위엄을 드러낸 변화. 문과 행각, 의례용 기물도 함께 갖추며 경운궁의 중심 공간을 정비함.

고종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국제행사를 준비하며 1902년부터 지은 서양식 영빈관 돈덕전이 완성됨. 외국 사절을 맞고 대한제국이 독립된 근대국가임을 알리려는 외교적 목적을 담은 건물. 전통 목조 전각과 서양식 건물이 함께 자리하는 경운궁의 특징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1907년에는 순종의 즉위식 장소로 사용됨.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왕태자와 함께 경운궁으로 돌아옴. 을미사변 이후 신변 안전을 우려해 공사관으로 옮긴 지 약 1년 만의 환궁. 외국 공사관들이 모여 있던 정동의 경운궁을 새 정치 중심지로 선택하며, 뒤이어 대한제국 황궁으로 확대·정비할 기반을 마련함.

덕수궁 대한제국

경운궁에 큰불이 나 함녕전·중화전·즉조당·석어당 등 주요 전각이 소실됨. 황궁의 중심부가 피해를 입으면서 고종은 수옥헌, 뒤의 중명전을 거처이자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게 됨. 이후 전각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규모와 형태가 달라져, 현재의 덕수궁을 이해할 때 화재 이전과 재건 이후를 구분해야 하는 계기가 됨.

덕수궁 중명전

개발도상국의 오존층 파괴물질 감축을 돕는 잠정 다자기금이 운영을 시작한 시점. 대체물질과 생산설비 전환에 드는 합의된 추가비용, 기술협력과 역량 강화를 지원하여 규제 의무와 이행 능력의 격차를 줄이려는 장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국제 환경협약의 재정 지원을 제도화한 사례.

제록스가 일반 용지에 복사하는 탁상형 복사기 813을 선보임. 대형 914로 검증한 보통용지 복사를 책상 위에 놓을 수 있는 제품으로 넓힌 변화. 분당 7장 성능을 갖춘 새 기종의 등장으로 제로그래피가 서로 다른 사무 공간과 사용 규모에 대응하는 제품군으로 발전함.

Xerox 914

고종이 경운궁의 태극전을 중화전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명함. 당시의 태극전은 오늘날의 즉조당에 해당하며, 황제국의 공식 정전 역할을 맡기 위해 명칭과 용도를 바꾼 조치. 1902년 별도의 중층 중화전을 새로 세운 일과 구분되는 초기 황궁 정비 과정.

덕수궁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된 뒤 인조가 경운궁에서 왕위에 오름. 이후 궁에 편입되었던 집들 대부분을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면서 궁역이 크게 줄어듦. 즉조당 등 왕실의 기억을 지닌 일부 전각은 남았으나, 경운궁은 19세기 말까지 주요 정무 공간에서 멀어지게 됨.

농업 훈증 등에 사용하던 메틸브로마이드의 생산·소비 전폐 시한이 개발도상국에도 도래한 시점. 선진국에 2005년부터 적용된 일반적인 전폐 조치를 확대하여 주요 오존층 파괴물질의 감축 범위를 넓힌 성과. 검역·선적 전 처리와 승인된 중요용도 등 별도 예외가 존재하므로 모든 메틸브로마이드 사용의 완전한 금지와는 구분되는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