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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8,099

정렬

1992 20건
34년 전

에픽 레코드를 통해 첫 정규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을 발표함. 〈Killing in the Name〉, 〈Bombtrack〉, 〈Freedom〉 등이 수록되었으며 밴드의 랩과 헤비 메탈 결합 및 정치적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 됨.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3부작을 다시 편집한 홈비디오판의 미국 출시. 콜레오네 가문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엮은 9시간 43분 분량의 구성. 로버트 드 니로가 《대부 2》에서 연기한 젊은 비토 콜레오네의 기존 장면을 수록한 편집본.

1992년 10월 유즈넷 뉴스그룹 alt.folklore.urban에서 오늘날 인터넷 트롤링을 뜻하는 ‘trolling’의 초기 용례가 기록됨. 데이비드 에산은 10월 2일 글에서 ‘trolling’을 언급했고, 스콧 크로마는 10월 9일 ‘Trolling for Newbies’라는 제목의 글을 올림.

당시의 트롤링은 낯선 이용자를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행위라기보다, 오래된 오해나 반복된 주제를 일부러 꺼내 신참의 진지한 반응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내부의 장난에 가까웠음. 낚싯줄에 미끼를 끌어 반응을 기다리는 낚시 기법 ‘trolling’의 비유에서 나온 표현으로, 훗날 적대적 도발과 온라인 괴롭힘까지 포괄하는 현대적 의미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됨.

트롤링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소말리아를 방문해 기근과 내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와 의료·급식 현장을 둘러봄. 사망 약 네 달 전 이루어진 마지막 시기 해외 구호 활동 가운데 하나로, 귀국 후에도 소말리아의 인도주의 위기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감.

1992년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피터의 친구들》.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제작하고 앤드류 벤슨 역으로 출연한 앙상블 코미디. 대학 시절 공연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피터의 집에서 새해를 맞으며 각자의 관계와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스티븐 프라이, 엠마 톰슨, 휴 로리, 이멜다 스턴턴 등이 출연하고 리타 러드너와 마틴 버그먼이 각본을 맡음. 브래너는 이 현대극에서 친구들의 재회를 통해 우정, 결혼과 상실을 다룸.

케네스 브래너 감독·제작·앤드류 벤슨 역

대한적십자사의 주선으로 국내 연고자가 없는 고령 사할린 동포들이 집단으로 영주귀국함. 이전에는 국내 직계가족의 초청을 받은 동포들이 주로 귀국했으나, 현지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고령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귀국과 수용이 추진됨. 춘천의 ‘사랑의 집’이 거주와 돌봄을 맡으면서, 일시 모국방문을 넘어 무연고 동포의 국내 정착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됨.

중국이 유인우주계획을 승인했음. 계획은 사람을 우주에 보내고 귀환시키는 첫 단계에서 시작해 우주유영과 도킹 등으로 기술을 확장하고, 장기적으로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단계적 구상을 담았음.

선저우 5호는 이 계획의 첫 유인 비행을 실현한 임무였음. 계획의 출범과 2003년 실제 유인 발사를 구분하면, 첫 성공까지 필요한 개발 기간과 준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음.

라디오헤드가 싱글 〈Creep〉을 처음 발표함. 조용한 절과 강하게 터지는 기타 소리의 대비가 밴드의 초기 인상을 형성함.

처음부터 영국에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으며, 해외 라디오를 통해 반응을 얻은 뒤 1993년 영국 재발매에서 인기가 확대됨. 따라서 최초 발매 시점과 국제적인 히트곡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음.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은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의 세 분야별 부속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음. 기본합의서가 제시한 원칙을 실제로 어떻게 지키고 실행할지 더 자세하게 정한 문서들이었음.

체제 존중과 비방 중지, 무력충돌 방지, 각 분야의 교류협력 절차 등을 구체화했으며, 화해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도 합의했음. 다만 모든 쟁점이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합의되지 않은 문제를 계속 논의하기로 남겨 둔 조항도 있었음.

남북기본합의서

1992년 9월 16일 영국 정부는 대규모 파운드 매입과 금리 인상에도 환율 방어에 실패한 뒤 파운드화의 유럽환율메커니즘(ERM) 참여를 중단. 이른바 '검은 수요일'로 불린 사건으로, 영국은 ERM의 환율 방어 의무에서 벗어나 이후 독자적 통화정책 운용으로 전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