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 파튼과 허센드 가족이 협력해 1986년 5월 3일 테네시주 피전포지에서 돌리우드 개장. 파튼은 고향인 스모키산맥 지역을 외부 방문객에게 알리고 지역 주민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사업의 주요 목표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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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 파튼, 영화 《9 to 5》 출연과 동명 주제가 발표
1980년 제인 폰다·릴리 톰린과 영화 《9 to 5》에 출연하고 동명의 주제가 「9 to 5」를 직접 작사·작곡. 주제가는 이듬해 제5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오름.
1977년 앨범 《Here You Come Again》 발표. 컨트리에서 팝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제작한 크로스오버 성격의 음반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미국에서 100만 장 판매에 따른 플래티넘 인증 획득.
1974년 《The Porter Wagoner Show》에서 하차하며 왜고너와 함께하던 활동에서 독립. 계약 관계에 따라 왜고너는 1976년까지 파튼의 음반 제작을 계속했으나, 파튼은 독자적인 솔로 활동으로 이동.
1974년 「Jolene」과 「I Will Always Love You」가 각각 미국 컨트리 차트 1위 기록. 「I Will Always Love You」는 포터 왜고너와의 음악적 파트너십을 끝내며 그에게 전하는 작별의 의미로 쓴 자작곡.
돌리 파튼, 그랜드 올 오프리 회원으로 헌액
1969년 1월 4일 그랜드 올 오프리 정식 회원으로 헌액. 1959년 13세에 처음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지 약 10년 만의 정식 회원 가입.
1967년 포터 왜고너의 《The Porter Wagoner Show》에서 기존 듀엣 파트너 노마 진을 대신할 가수로 합류. 이후 RCA 레코드와 계약해 왜고너의 듀엣 파트너인 동시에 솔로 가수로 음반 활동 시작.
돌리 파튼, 13세에 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 첫 출연
지역 방송 출연과 초기 음반 녹음 등 음악 활동을 이어가던 가운데 1959년 13세의 나이로 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에 게스트로 첫 출연.
빈트 서프, 구글 은퇴 계획 발표
2026년 6월 30일 빈트 서프가 Open Frontier 행사 패널에서 구글 부사장 겸 수석 인터넷 전도사 자리에서 곧 은퇴할 계획이라고 밝힘. 해당 패널에서 자율 AI 에이전트 사이의 상호운용을 위해 자연어에만 의존하기보다 엄밀한 프로토콜과 표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함.
빈트 서프·로버트 칸, 대통령 자유 훈장 수훈
2005년 11월 9일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음. 인터넷의 기본 통신 구조를 설계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미국 최고 수준의 민간 서훈으로 인정받음.
2005년 10월 빈트 서프가 구글에 부사장 겸 수석 인터넷 전도사(Chief Internet Evangelist)로 합류. 인터넷의 미래·표준·접근성 등을 알리고 정책·기술 담론을 이끄는 역할 수행. 이후 20여 년간 구글에서 인터넷 발전과 우주 통신(행성 간 인터넷) 등 장기 과제에 참여.
빈트 서프·로버트 칸, 2004년 튜링상 수상자로 선정
2005년 2월 16일 ACM이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을 2004년 튜링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함.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 프로토콜의 설계와 구현, 그리고 인터넷 발전을 위한 리더십을 인정받은 수상.
2000년 11월 16일 빈트 서프가 ICANN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됨. ICANN 초대 이사회 의장은 에스더 다이슨이며, 서프는 후임 의장으로 2007년까지 재임하면서 인터넷 도메인·주소 체계의 국제적 조정과 거버넌스 운영에 관여함.
1998년 빈트 서프가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특별방문과학자(Distinguished Visiting Scientist)로 임명돼 행성간 인터넷(Interplanetary Internet) 연구에 참여함. 장시간 지연과 통신 단절이 일상적인 우주 환경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조를 연구하며 이후 지연·단절 내성 네트워킹(DTN)으로 이어지는 연구 축을 형성함.
1992년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 등이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를 설립함. 인터넷의 개방적 발전과 세계적 확산을 지원하고 IETF·IAB 등 인터넷 표준화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국제 비영리 조직으로 출범했으며, 빈트 서프가 초대 회장을 맡음.
빈트 서프, MCI Mail과 인터넷 연결 추진
CNRI 재직 중 빈트 서프가 상용 전자우편 서비스 MCI Mail과 인터넷의 연결을 추진함. 1988년 상용 전자우편과 인터넷 사이의 연동을 위한 허가와 실험을 추진했고, 1989년 MCI Mail이 인터넷과 연결되며 상용 네트워크와 연구용 인터넷 사이의 경계를 넓히는 초기 사례가 됨.
1983년 1월 1일 아르파넷이 기존 NCP에서 TCP/IP로 전면 전환함.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이 설계하고 DARPA에서 발전시킨 TCP/IP가 실제 아르파넷의 표준 프로토콜로 채택된 이른바 '플래그 데이'로,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하나의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현대 인터넷 구조가 본격적으로 정착한 사건.
1976년 9월 빈트 서프가 스탠퍼드 대학교를 떠나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 정보처리기술실(IPTO)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합류함. DoD Internet 프로젝트를 포함한 패킷 통신과 네트워크 보안 연구를 관리하며 TCP/IP가 실험 단계에서 실제 인터넷 체계로 발전하는 과정에 관여함.
빈트 서프 등, TCP 규격 RFC 675 발표
1974년 12월 빈트 서프가 요겐 달랄, 칼 선샤인과 함께 RFC 675 「Specification of Internet Transmission Control Program」을 발표함. 1974년 5월 논문에서 제시한 인터네트워킹 개념을 구현 가능한 전송 제어 프로그램의 기술 명세로 구체화한 문서로, 이후 TCP와 IP가 분리·발전하는 과정의 초기 규격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