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압력을 받은 장쭤린 휘하 동북3성 군벌 측 중국 당국이 신흥무관학교를 수색하고 폐쇄 명령. 당시 교장 이세영과 교사 이범석은 삼원보 방면으로 피신.
이 사건은 한족회 해산 명령과 함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에 가해진 중국 관헌의 탄압 일부. 학교는 즉시 완전히 해산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일제·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과 피신을 거쳐 1920년 여름 운영 종료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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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압력을 받은 장쭤린 휘하 동북3성 군벌 측 중국 당국이 신흥무관학교를 수색하고 폐쇄 명령. 당시 교장 이세영과 교사 이범석은 삼원보 방면으로 피신.
이 사건은 한족회 해산 명령과 함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에 가해진 중국 관헌의 탄압 일부. 학교는 즉시 완전히 해산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일제·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과 피신을 거쳐 1920년 여름 운영 종료로 이어짐.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과 교전. 일제와 중국 군경의 탄압으로 신흥무관학교가 운영을 중단했지만, 지청천 등은 사관생도와 졸업생을 중심으로 교성대를 편성해 독립군 부대에 합류.
북로군정서의 연성대장 이범석 등 신흥무관학교와 인연을 가진 교관·졸업생들이 지휘관과 전투원으로 참여. 청산리 전투는 북로군정서 정예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군의 대일 항전이며, 신흥무관학교가 양성한 군사 인력이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전장으로 이어진 사례.
신흥중학교가 고산자로 이전해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지청천이 연성대장으로, 윈난강무학교 출신 이범석·러시아군 장교 출신 김경천 등이 교관으로 참여.
장교·하사관 양성 과정에서 전술·병학·지휘 교육을 담당하며 학교의 군사교육 체계 강화. 지청천은 이후 교성대장을 거쳐 서로군정서 사령관으로 활동.
이범석의 신흥무관학교 교관 활동은 1919년 10월에도 확인됨.
신흥무관학교 폐교 뒤 지청천이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백두산 일대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에 합류. 이들은 이후 김좌진 부대를 따라 밀산으로 이동한 독립군 통합 과정에 참여.
밀산에 집결한 여러 독립군 세력이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면서,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생도 인력도 통합 독립군 조직의 기반에 편입. 학교의 군사교육 인력이 독립전쟁과 독립군 통합으로 이어짐.
한족회가 설치한 군정부가 1919년 11월 서로군정서로 개편. 이상룡이 독판, 여준이 부독판, 지청천이 사령관을 맡으며 남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군정 조직 구성.
신흥무관학교는 서로군정서의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기능. 학교 운영 인사와 졸업생들이 군정서의 지휘부와 군사 조직에 참여하며, 교육기관·자치기관·독립군 조직이 결합한 체제 형성.
3·1운동 뒤 독립운동 열기의 고조와 입학생 증가로 기존 합니하 시설의 수용 한계가 커지자, 유하현 제3구 고산자 하동 대두자로 이전·개교하고 신흥무관학교로 개칭.
고산자 학교를 본교로 삼고 합니하 학교는 분교로 운영. 장교반 6개월·하사관반 3개월·특별훈련반 1개월의 단기 군사교육과정을 편성하며 독립군 양성 체제 정비. 윤기섭이 교감, 이세영이 교장을 맡고 성준용·원병상·이범석 등이 교관으로 참여.
삼원보 추가가((鄒家街)의 열악한 시설과 감시 우려를 피해 통화현 제6구 합니하(哈泥河)로 이전하고 새 교사(校舍) 낙성(落成). 이석영이 처분한 전답 6천 석의 자금과 교사·학생의 노동력으로 교사와 병영, 강당, 내무반 등을 마련.
합니하 이전으로 중등과정 교육과 군사훈련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기반 확보. 당시 공식 명칭은 신흥강습소였으나, 학생과 지역사회에서는 신흥중학교 또는 신흥무관학교로도 불림.
경학사 조직 뒤 이회영·이동녕·이관직·이상룡·윤기섭 등이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鄒家街)에 신흥강습소 설립. 국내에서 모여든 청년에게 구국 이념과 항일 의식을 교육하고, 독립운동의 중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
중국 당국과 일제 관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학교보다 낮은 등급의 교육기관처럼 보이는 ‘강습소’ 명칭 사용. 실제로는 군사교육을 병행한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운영되었으며, 신흥무관학교의 전신.
신종오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가 서울고등법원 청사 인근 화단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경찰은 건물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사망 경위를 조사했으며, 당시까지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힘. 신 판사는 같은 해 4월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재판부를 맡았음.
루크 그츠가 경기 침체로 구직에 나선 기술 인력과 채용 중인 회사를 연결하자는 취지의 ‘Ask HN: Who’s Hiring?’ 게시물을 올림. 기업의 채용 공고와 구직 관련 정보가 댓글로 모이는 방식으로 운영. 이후 해커 뉴스의 정기적인 채용 정보 스레드 관행의 출발점으로 남음.
드루 휴스턴이 ‘Show HN, Dropbox’라는 제목으로 드롭박스의 초기 데모를 해커 뉴스에 게시. 이용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프로젝트·실험을 직접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Show HN’ 형식의 초기 사례. 이후 해커 뉴스에서 개발자와 창업가가 작업물을 공개하는 대표적 게시 관행으로 정착.
대니얼 개클이 해커 뉴스에서 스콧 벨이 약 1년 전 운영 업무를 그만두었다고 밝힘. 2019년까지 개클과 벨이 함께 맡던 모더레이션 업무는 이후 개클을 중심으로 운영됨. 개클은 사용자명 dang으로 공개 대응과 이용자 소통을 맡으며 해커 뉴스의 대표적 운영자로 자리함.
대니얼 개클이 톰 하워드가 해커 뉴스 모더레이터로 공개 활동을 시작한다고 공지. 하워드는 이미 수년간 모더레이션 업무를 맡아왔으며, 이후 사용자명 tomhow로 모더레이터 의견을 게시물 댓글에 공개적으로 남기게 됨. 개클은 자신의 운영 역할도 계속 유지한다고 밝힘.
폴 그레이엄이 와이 콤비네이터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해커 뉴스의 일상 운영도 다른 와이 콤비네이터 구성원에게 넘김. 와이 콤비네이터는 대니얼 개클과 스콧 벨을 해커 뉴스 운영 담당자로 소개. 창립자가 맡아오던 운영과 모더레이션 업무가 별도 담당자에게 이관되는 변화.
폴 그레이엄이 뉴스.YC의 초점을 스타트업 관련 뉴스에서 해커 일반이 흥미를 느낄 만한 뉴스로 넓히고, 사이트 이름을 ‘해커 뉴스(Hacker News)’로 변경한다고 공지. 당시 ‘해커’는 보안 침입자가 아니라 컴퓨터 기술을 깊이 탐구하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문화적 의미로 사용.
와이 콤비네이터가 초기 명칭 ‘스타트업 뉴스(Startup News)’의 소셜 뉴스 사이트를 공개. 와이 콤비네이터 지원 창업가들이 스타트업 관련 링크를 이메일 대신 공유할 공간으로 기획됨. 사용자가 링크를 제출하고 이용자 투표로 게시물의 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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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스루상이 존 점퍼와 데미스 허사비스를 2023년 생명과학 부문 수상자로 발표. 두 사람은 딥러닝으로 아미노산 서열에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알파폴드 개발 공로를 인정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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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커 재단이 존 점퍼와 데미스 허사비스를 2023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 수상자로 발표.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알파폴드의 발명 공로를 수상 사유로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