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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60 20건
66년 전

이은상이 이순신의 손글씨 원본을 다른 자료와 비교해 글자를 확인하고 바로잡아 《이충무공난중일기》를 출판. 이후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내용으로 원본에서 없어진 부분을 채우고, 한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으로 이어진 연구.

신상옥이 기존 프로덕션을 신필름으로 확대하며 기업형 스튜디오를 지향. 전속 배우와 기술 인력, 촬영·녹음·편집 시설을 결합한 상설 제작 체계를 구축.

1961년 《성춘향》의 흥행으로 사업 기반을 넓혔으며, 정식 법인인 주식회사 신필림은 1961~1970년 존속. 1960년은 사업의 확대 시점, 1961년은 법인 시기의 시작에 해당.

신상옥

《로맨스 빠빠》는 신상옥이 감독·제작한 가족 코미디. 보험회사에서 해고된 아버지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배려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실직의 불안을 희극으로 전환.

김승호·주증녀·최은희·김진규 등이 출연하며 신성일은 이 작품으로 영화에 데뷔. 도시 서민 가족의 생활과 세대 사이의 관계를 앞세운 작품.

로저 하그리브스가 마거릿 크리스틴 허드와 결혼함. 부부는 장남 애덤과 자일스, 쌍둥이 딸 어밀리아와 소피 등 네 자녀를 둠. 어린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은 하그리브스가 광고업과 함께 어린이책 창작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배경이 됨.

1960년대에 이반 게팅이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의 위치를 위성으로 정밀 산출하는 항법 개념을 제창하고, 로저 이스턴이 미 해군 연구소에서 위성 원자시계와 시각 기반 측위를 결합한 타이메이션 체계를 고안. 이후 GPS로 통합되는 위성 항법의 이론적·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시기. 훗날 나브스타 GPS의 신호·시각 동기 원리가 이 선행 연구에서 계승됨.

GPS

티나 메를린이 바이온트 관련 보도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음.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상황은 그의 기사가 근거 없는 불안 조성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함. 그러나 경고 보도의 정당성이 인정된 뒤에도 저수지의 안전을 둘러싼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

바이온트 댐 참사

3·15 부정선거와 민주화운동 탄압의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헌법 부칙에 특별입법의 근거를 추가한 제4차 개정헌법의 공포. 4·19 혁명 이후 기존 법률만으로 과거의 반민주행위에 충분히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요구를 반영한 조치.

소급 처벌을 제한하는 형벌불소급 원칙의 예외를 헌법에 두고, 관련 사건을 다룰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의 설치 근거를 마련한 개정. 과거 국가폭력과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 추궁, 법적 안정성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 헌정사적 사례.

대한민국 헌법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이 통합대회를 개최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련)이라는 명칭과 강령을 채택한 사건. 민주화운동사전은 11월 26일 명칭 결정, 27일 속개와 중앙운영위원 선출, 30일 김말룡 임시의장 선출로 이어진 과정을 설명.

노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한 출범 과정이지만 지도부 구성과 대표성을 둘러싼 갈등까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었던 변화.

유럽인권재판소가 로리스 대 아일랜드 사건에서 예비적 이의와 절차 문제를 다룬 첫 판결을 내림. 아일랜드의 재판 없는 구금에 대한 신청이 본안 심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내려진 판단이었음.

재판소의 첫 판결은 이 절차 판결이며, 구금 자체의 협약 위반 여부를 결정한 본안판결은 1961년 7월 1일에 내려짐.

영세중립화통일추진위원회가 1960년 11월 6일 경상남도 마산 무학국민학교에서 발기대회와 강연회를 열고 공식 발족함. 김문갑을 위원장으로 하는 이 단체는 4·19혁명 이후 혁신계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외국군 철수와 남북한의 자주적 교섭에 기초한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통일을 주장함. 1960년 11월 1일 준비모임 이후 조직한 행사로, 이후 국회 및 주한미국대사관 등에 주장과 선전물을 전달하고 1961년 2대악법 반대운동에 참여함.

토크산에서 약 70만㎥의 토사가 저수지로 미끄러져 들어감. 산비탈에는 약 2km에 이르는 M자 형태의 균열도 나타나 훨씬 큰 덩어리가 움직일 가능성을 보여주었음. 이후 수위를 낮추고 우회 수로를 마련했으나, 이러한 조치가 산 전체의 붕괴 위험을 제거한 것은 아니었음.

바이온트 댐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