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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가 자체 AI 브랜드 '익시(ixi)'를 기반으로 한 AI 통화 앱 '익시오(ixi-O)'를 선보임. 통화 내용을 단말기에서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로 실시간 보이스피싱 탐지와 국내 최초 안티 딥보이스 감지 알림을 제공. 통신을 넘어 AX(AI 전환) 컴퍼니로 거듭나려는 전략 서비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30만 건 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LG유플러스에 과징금 68억 원과 과태료 2700만 원을 부과하고 시스템 점검·재발방지 시정조치를 의결함. 당시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통신사의 보안 책임을 강하게 물은 처분.

LG유플러스

황현식 대표가 개인정보 유출과 인터넷 장애에 대해 직접 고개를 숙여 사과함. 연간 정보보호 투자를 기존의 3배인 1000억 원으로 늘리고, 정보보호·개인정보보호책임자(CISO·CPO)를 CEO 직속으로 강화하며 전 고객 유심(USIM) 무상 교체를 추진하겠다고 발표. 잇단 보안 사고로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비상 대응.

LG유플러스

2023년 1월 해킹으로 약 30만 건(중복 포함 약 60만 건)의 고객 개인정보가 불법거래 사이트에 유출됨. 같은 달 29일에는 연쇄 디도스(DDoS) 공격으로 유선 인터넷이 반복 마비돼 LCK 중계와 고속버스 예매 전산망까지 멈춤. 통신사의 정보보호 부실이 드러난 한국 통신업계의 대표적 보안 사고.

LG유플러스가 주주총회에서 하현회 부회장 후임으로 황현식 대표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입, 대표이사로 공식 임명. 외부·그룹 인사가 맡아오던 최고경영자 자리에 처음으로 LG유플러스 내부 출신이 오른 사례. 통신 본업 경쟁력과 콘텐츠·플랫폼 사업 확장을 함께 추진하는 체제로 전환한 인선.

LG유플러스

2019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기업결합 승인과 12월 임시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인수한 CJ헬로의 사명을 'LG헬로비전'으로 바꾸고 자회사로 편입함. 케이블TV·알뜰폰 가입자를 확보해 미디어·플랫폼 경쟁력을 강화. 통신과 유료방송의 수직 결합을 마무리한 절차.

LG유플러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며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5G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가 보안 우려의 표적이 됨. 미국은 2018년부터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배제를 요청했고, LG유플러스는 주한미군 기지 주변에는 화웨이 장비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명. 화웨이 장비의 가성비·납기와 미국의 안보 압박이 충돌한 사안.

LG유플러스가 SK텔레콤·KT와 함께 같은 날 밤 스마트폰 기반 5G 서비스를 개시하며 한국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 국가가 됨. LG유플러스는 5G 기지국에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국내 통신3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5G를 도입. 통신 경쟁력을 끌어올린 한편, 곧 중국 장비 보안 논란의 핵심에 서게 됨.

LG유플러스가 CJ ENM으로부터 케이블TV 1위 사업자 CJ헬로의 지분 50%+1주를 약 8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함. 유료방송·미디어 시장에서 규모를 키워 SK텔레콤·KT와의 경쟁에 대응하려는 전략. 통신과 방송의 결합을 가속한 통신업계 인수합병(M&A)의 신호탄.

LG유플러스

LG유플러스가 2.6㎓ 신규 주파수 대역 LTE망 구축에 국내 통신사 중 처음으로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도입함. 기존 에릭슨 장비의 공급 차질 속에 화웨이의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가 채택 배경. 후일 5G 시대 미·중 갈등 속 보안 논란으로 번지는 한국 통신망 화웨이 도입의 출발점.

LTE 상용화 9개월 만에 84개 도시와 전국 889개 군·읍·면, 주요 도로까지 망을 깔아 세계 최초로 LTE 전국망을 완성함. 인구 대비 99.9%, 국토 80% 이상을 포괄했고 세계이동통신공급자협회(GSA)의 공식 인정을 받음. '세계 최초 LTE 전국망' 타이틀로 LG유플러스가 통신 강자로 자리매김한 계기.

LG유플러스가 국내 통신사 중 가장 먼저 4세대 이동통신 LTE를 상용화함. 7월 1일 00시를 기점으로 LTE 전파 쏘아올림. 2G·3G 시절 만년 3위로 밀리던 열세를 LTE 조기 투자로 만회하려는 승부수. 이후 빠른 전국망 구축으로 이어지는 통신 경쟁력 반전의 출발점.

2009년 KT와 KTF의 합병에 대응해 LG텔레콤이 LG데이콤·LG파워콤을 흡수 합병하며 유·무선과 초고속인터넷·IPTV를 아우르는 종합 통신사로 통합 출범함. 2009년 11월 27일 임시주총 의결, 12월 3일 공정거래위원회 승인, 12월 14일 방송통신위원회 인가를 거침. 한동안 '통합LG텔레콤'을 임시 명칭으로 사용.

LG그룹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LG텔레콤을 세워 이동통신 시장에 진입함. 1997년 10월 식별번호 019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EZ-i·카이 등 휴대전화 인터넷 사업도 전개. 후일 데이콤·파워콤과 합쳐져 LG유플러스 이동통신 부문의 모체가 됨.

정부의 데이터통신 육성 정책에 따라 음성통신을 맡던 한국전기통신공사와 별개로 국내 최초의 데이터통신 전문 회사 한국데이타통신이 출범함. 천리안 등 PC통신과 국제·시외전화,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국 정보화사회의 서막을 엶. 1991년 '데이콤', 2006년 'LG데이콤'으로 이어지는 LG유플러스의 가장 오래된 뿌리.

1939년 10월 16일 경학원에서 열린 전국 유림대회에서 조선유도연합회 결성이 결의됨. 미나미 지로(南次郎) 조선총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1932년 출범 뒤 유명무실해진 조선유교회를 대신해 전시체제의 유림 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됨.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 진흥과 황국신민화를 표방한 일제 말기 최대의 관변 유림 단체.

1998년 선경그룹이 주력사 유공의 사명을 'SK'로 바꾸는 동시에 그룹명을 '선경그룹'에서 'SK그룹'으로 변경함. 1953년 선경직물에서 출발한 그룹이 통신·에너지 중심의 현대적 기업집단으로 정체성을 새로 세운 전환점. 이로써 SK텔레콤·SK 등 'SK' 통합 브랜드 체계가 자리 잡음.

1992년 8월 20일 노태우 정부 시절 선경그룹이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됨. 그러나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을 들어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 등이 '사돈 특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함. 거센 여론에 밀려 선경은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 뒷날 제2이동통신 신규 진입 대신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인수로 방향을 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