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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듀렐 스톤이 국제 양식으로 설계한 53번가 신축 건물을 1939년 5월 10일 개관함. 백색 대리석과 유리 외벽의 6층 건물로, 주변 타운하우스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더니즘 건축. 개관식에는 6,000여 명이 모였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로 축사를 보낸, 미술관의 현 위치 정착을 알린 사건.

공동 설립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1939년 30세에 회장으로 취임함. 화려한 추진력으로 미술관의 홍보·작품 수집·신관 확장을 주도. 1932년부터 이사로 관여했고 1946–1953년 다시 회장을 맡았으며, 훗날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

초대 관장 바가 기획해 추상미술의 흐름을 통사적으로 정리함. 도록 표지에 후기인상주의에서 여러 '이즘'으로 갈라지는 추상미술의 계보를 그린 '바의 다이어그램'을 실어, 근대미술을 선형적 계보로 서술하는 관점을 제시. 같은 해 《환상미술, 다다, 초현실주의》전과 더불어 MoMA식 근대미술 narrative를 각인시킨 전시.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1935년 미국 미술관 최초로 영화를 수집·연구·상영하는 부서를 세움. 제작자 존 헤이 휘트니가 초대 위원장을, 영화비평가 아이리스 배리가 초대 큐레이터를 맡아 약 8천 편의 컬렉션을 구축. 영화를 정식 예술 장르로 다룬 선구적 시도로, 193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표창을 받음.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기획해 1920년대 유럽 모더니즘 건축을 소개함. 이 전시에서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화되어 건축 사조로 정착. 같은 해 세계 최초의 미술관 건축·디자인부가 신설되어, 건축과 디자인을 미술관의 정식 수집 영역으로 끌어들인 분기점.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공동 설립자이자 손꼽히는 근대미술 수집가였던 블리스가 1931년 세상을 떠나며 세잔·쇠라·고갱 등 약 150점을 미술관에 유증함. 이 '릴리 P. 블리스 유증'은 MoMA 영구 컬렉션의 핵심 토대가 됨.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도 훗날 이 유증 기금으로 입수된, 미술관 소장품 형성의 결정적 계기.

2025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이동통신 3사가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등을 통해 번호이동 가입자 순증감 정보를 공유하며 판매장려금과 거래조건을 담합했다고 보고 과징금 총 963억 원을 확정함. SK텔레콤 388억, KT 299억, LG유플러스 276억으로, 당초 심사보고서의 5조 5천억 원 추산에서 크게 줄어듦. 통신3사는 처분에 반발해 취소소송을 제기함.

2025년 4월 19일 밤 SK텔레콤이 악성코드 공격으로 가입자 인증 서버가 침해돼 유심(USIM) 관련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히고 다음 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함. IMSI·단말기식별번호(IMEI)·유심 인증키 등 최대 9.7GB가 빠져나간 정황이 드러나 국내 통신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침해로 기록됨. SK텔레콤은 4월 25일 전 고객 유심 무상 교체를 결정했고, 대량 가입자 이탈과 위약금·과징금 논란으로 이어짐.

2021년 11월 SK텔레콤이 통신·AI 중심의 존속법인 SK텔레콤과 반도체·투자 중심의 신설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로 인적분할됨. SK하이닉스 등 비통신 자산을 SK스퀘어로 떼어내 기업가치를 재평가받으려는 지배구조 개편으로, 분할 후 두 회사가 11월 말 유가증권시장에 나란히 재상장됨.

2012년 2월 SK텔레콤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고, 3월 26일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바꿈. 통신사가 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넓힌 SK그룹 최대 규모 인수로, 최태원 회장의 결단으로 추진됨. SK하이닉스는 이후 SK그룹의 핵심 캐시카우이자 AI 메모리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함.

SK텔레콤

1999년 12월 SK텔레콤이 제2이동통신 사업자 신세기통신(017)의 지분 인수를 추진함. 2000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년 6월까지 시장 점유율 50% 미만 유지'를 조건으로 인수를 승인했고, 그해 6월 신세기통신이 SK그룹에 편입됨. 2002년 1월 SK텔레콤에 최종 흡수합병되며 SK텔레콤이 이동통신 시장 1위 사업자 지위를 확고히 함.

SK텔레콤

1997년 3월 선경그룹에 편입된 한국이동통신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명을 'SK텔레콤'으로 바꾸며 SK 브랜드 통신사로 새 출발함. 가장 넓은 커버리지를 가진 800㎒ 주파수와 최대 가입자 기반을 앞세워 국내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의 입지를 굳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SK텔레콤이라는 이름이 이때 등장함.

SK텔레콤

1996년 1월 3일 한국이동통신이 인천·부천 지역에서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상용화함. 당시 상용화 전례가 없던 미지의 기술을 정부·ETRI·삼성 등과 함께 세계 최초로 구현해 '011' 신화의 출발점이 됨. 이 성과로 한국은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했고, 2024년 SK텔레콤은 CDMA 상용화 공로로 IEEE 'ICT 명예의 전당'에 등재됨.

1994년 1월 선경그룹이 정부가 진행한 공개입찰에서 한국이동통신 지분 약 23%를 시가보다 훨씬 높은 총 4,271억 원에 사들여 최대 주주로 올라섬. 1980년 유공 인수 이후 정보통신을 차세대 비전으로 삼아온 최종현 회장의 오랜 구상이 실현된 인수로, 공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이 민영화되어 선경 품에 안김. 이 인수가 훗날 SK텔레콤과 SK그룹 통신 사업의 토대가 됨.

SK텔레콤

1988년 5월 13일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한국이동통신㈜로 사명을 바꾸고 독립 사업자로 새 출발함. 같은 해 7월 1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내 첫 휴대형(아날로그)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1G 이동통신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함. 1989년에는 주식을 상장함.

1984년 3월 29일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의 위탁회사로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설립됨. 같은 해 5월 1일 AMPS 방식 차량전화(카폰)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개시해 한국 이동통신 산업의 출발점이 됨. 단말기값만 자동차 한 대 값에 맞먹어 극소수만 쓰던 서비스였지만 신청이 쇄도해 한 달 만에 가입자 2천 명을 넘김.

SK텔레콤

젠슨 황이 2026년 6월 5일부터 나흘간 방한해 SK·현대차·LG 등 주요 그룹 총수들과 연쇄 회동함.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들어갈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에 대해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세 곳 모두 공급 인증을 통과했다고 발표함. 6월 7일에는 SK하이닉스와 AI 시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는 다년간 기술 파트너십을 맺으며 한국 메모리 업계와의 동맹을 굳힘.

젠슨 황

젠슨 황이 2025년 10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의 마지막 연사로 나서 '지금이 한국에 특별한 기회'라며 AI 생태계 구축을 역설함. 엔비디아가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SK·현대차·네이버에 GPU 총 26만 장(최대 34조 원 규모)을 공급하기로 한 대형 협력을 발표함. 15년 만의 방한에서 한국을 미국·중국에 이은 AI 인프라 거점으로 끌어올린 분기점.

젠슨 황

엔비디아가 2025년 10월 29일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최초의 5조 달러 기업이 됨. 4조 달러 돌파(7월) 이후 불과 석 달 만의 기록으로, 젠슨 황은 차세대 블랙웰·루빈 칩을 앞세워 연 매출 '5천억 달러'를 내다본다고 밝힘. 방한 직전에 정점을 찍은 AI 붐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