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8,168

정렬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20건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제정·공포함.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국기를 이미 제정하였으니 팔도와 사도에 알려 사용하게 하자'고 아뢰자 윤허하여 전국에 반포됨. 태극기가 개인의 사용을 넘어 국가가 공인한 공식 국기로 자리 잡은 출발점.

태극기

제물포 조약 사후 처리를 위한 제3차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가던 1882년 9월, 증기선 메이지마루 선상에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직접 그려 사용함. 오랫동안 '최초의 태극기'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넉 달 앞선 이응준의 기를 변형해 4괘의 좌우를 바꿔 쓴 것으로 밝혀짐. 국가 사절이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게양한 이른 사례로, 태극기가 대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기 시작한 장면.

미국 측이 조약 체결에 쓸 국기를 요청하자, 김홍집의 지시를 받은 역관 이응준이 제물포에 정박한 미군함 안에서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를 그린 기를 제작·사용함.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 자리에서 쓰인 이 기는 오늘날 학계가 보는 '최초의 태극기'로, 조선이 근대 국가로서 처음 자국 국기를 내건 사례. 박영효의 기와 함께 태극기 기원 논의의 중심에 있음.

태극기

1923년 국기의 날 회의에서 68개 단체가 마련한 국기 예법(National Flag Code)이 1942년 공법 77-623호로 연방 법률이 됨. 국기의 게양·취급·경례 방식을 규정했으며, 나치 경례와 닮았다는 이유로 '벨러미 경례'를 빼고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 변화임. 성조기에 대한 예우가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됨.

미국의 Flag Code

성조기를 “어떻게 대하고, 언제·어디에·어떤 방식으로 게양할 것인가”를 정한 연방 차원의 예절 규범. 현재는 주로 미국 연방법전 제4편 제1장 (U.S. Code Title 4, Chapter 1 — The Flag)에 들어 있음. 원문은 미 하원 법령 사이트에서 볼 수 있음.

핵심 성격

가장 중요한 점은, Flag Code는 대부분 민간인을 강제로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르는 예절 지침’에 가깝다는 것. 의회조사국 CRS도 Flag Code에는 일반적인 불이행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집행 규정이 없고, 민간인·민간단체가 따를 수 있는 가이드로 기능한다고 설명.

즉, “성조기를 땅에 닿게 했다”, “밤에 조명 없이 걸어두었다”, “의류 디자인에 성조기 무늬를 썼다” 같은 행위가 Flag Code의 정신에는 어긋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곧바로 연방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구조는 아님. 다만 군대, 정부기관, 학교, 의전 행사 등에서는 별도의 규정이나 관행이 더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음.

역사

현대적 의미의 Flag Code는 1923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National Flag Conference에서 여러 민간·애국단체가 성조기 예절을 정리한 데서 출발. 이후 194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관련 공동결의에 서명하면서 연방법으로 성문화되었고, 1998년에는 기존 Title 36에서 현재의 Title 4로 재편입.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항의하며 프리시즌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기립을 거부하고 벤치에 앉음(이후 9월 1일부터 무릎 꿇기로 전환). '무릎 꿇기' 시위가 스포츠계 전반으로 번지며, 국기·국가에 대한 경의와 표현의 자유·인종 정의를 둘러싼 격렬한 사회 논쟁을 촉발함.

성조기

9·11 테러 당일 뉴욕 소방관 세 명이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잔해 위에 성조기를 세웠고, 사진기자 토머스 E. 프랭클린이 이 장면을 촬영함. 이오지마 사진에 비견된 이 이미지는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의 회복과 단결을 상징하게 됨. 9·11 이후 성조기 판매가 급증하고 집·자동차에 국기를 다는 물결이 일며, 성조기가 국가적 애도와 결속의 표상으로 다시 부각됨.

성조기

텍사스 대 존슨 판결에 반발한 의회가 1989년 연방 국기보호법을 제정하자, 이를 어기고 국기를 불태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다시 5대 4로 이 법을 위헌이라 결정함. 국기 소각을 처벌하려는 입법 시도가 거듭 좌절되면서, 성조기 모독을 금지하려면 헌법 수정밖에 없다는 점이 확인됨.

성조기

텍사스 대 존슨 판결로 주(州) 차원의 국기모독죄가 무효화되자, 의회가 '특정인을 모욕할 의도'라는 요건을 뺀 연방 차원의 국기보호법을 380대 38로 통과시킴. 부시 대통령은 헌법 수정이 옳은 길이라며 서명을 거부했으나 1989년 10월 28일 법률로 발효됨. 그러나 이 법 역시 이듬해 미국 대 아이크먼 판결에서 위헌으로 무효화되며, 성조기 모독 처벌을 둘러싼 입법·사법의 충돌을 보여줌.

성조기

1984년 공화당 전당대회(댈러스)에서 성조기를 불태운 그레고리 존슨의 유죄가 다투어진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정치적 항의로서의 국기 소각은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판결함. 48개 주의 국기모독죄가 무효화되었고, 성조기가 곧 표현의 자유 논쟁의 한복판에 선 기념비적 판례.

성조기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첫 달 착륙 중 달 표면에 특수 제작된 성조기(Lunar Flag Assembly)를 세움. 대기가 없는 달에서도 펼쳐 보이도록 가로대를 댄 나일론 깃발이었음. 지구 밖에 세워진 첫 국기로서, 냉전기 미국의 기술력과 개척 정신을 전 세계에 각인한 상징적 장면.

하와이가 1959년 50번째 주가 된 데 따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행정명령 10834호가 정한 별 50개(6개씩 5줄·5개씩 4줄 엇갈림 배열) 성조기가 1960년 7월 4일부터 공식 국기로 시행됨. 알래스카 승격으로 1년간 쓰였던 49개 별 국기를 잇는 디자인으로, 60년 넘게 이어진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쓰인 성조기.

성조기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고교 2학년이던 17세 로버트 헤프트가 역사 수업 과제로, 알래스카·하와이의 주 승격을 내다보고 48개이던 별을 50개로 늘린 성조기를 직접 만들어 제출함. 교사는 '별 개수가 틀렸다'며 B−를 주었고, 이듬해 같은 배열이 공식 국기로 채택되자 학점을 A로 고쳐줌. 통설로 굳은 일화지만, 같은 도안을 낸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단독 창안 여부엔 논란이 있음.

성조기

재향군인회 등이 500만 명 서명 청원을 모은 끝에, 상원이 1931년 3월 3일 법안을 통과시키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이튿날 서명해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이 미국의 공식 국가가 됨. 포트 맥헨리의 성조기를 노래한 곡이 국가가 되면서, 국기와 국가가 하나의 애국 의례로 결합됨.

성조기

태평양전쟁 이오지마 전투 중 미 해병대원 6명이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을, AP통신 사진기자 조 로젠탈이 촬영함(두 번째 게양 장면). 이틀 뒤 신문에 실려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해 퓰리처상을 받음. 전쟁채권 모금과 해병대 기념비의 모델이 되며, 성조기가 미국의 희생과 승리를 응축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됨.

성조기

그때까지 정부 기관에서만 66종의 제각각인 국기가 쓰이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행정명령 1556호로 별의 배열(가로 6줄×8개=48개)과 깃발의 비율·크기를 처음으로 표준화함(7월 4일 시행). 임의적이던 성조기의 형태가 통일된 규격을 갖추게 된 전환점.

베시 로스의 손자 윌리엄 캔비가 펜실베이니아 역사협회에서 '할머니가 조지 워싱턴 등의 의뢰로 첫 성조기를 바느질했고 별을 오각형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공개 발표함. 1870년의 이 발표로 베시 로스 전설이 대중에 퍼졌으나 이를 뒷받침할 사료가 없어 현대 학자들은 정설로 인정하지 않음. 그럼에도 미국 건국 신화의 한 장면으로 깊이 자리 잡음.

성조기

의회가 줄무늬는 독립 당시 13개 주를 기리는 13개로 되돌리고, 별은 주가 늘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되 그해 7월 4일부터 반영하도록 한 1818년 국기법을 제정함. 이로써 별의 수로 주의 수를 나타내는 오늘날의 원칙이 확립되어, 이후 모든 성조기 디자인 변경의 토대가 됨.

1794년 국기법에 따라 1795년 5월 1일부터 줄무늬와 별이 각각 15개인 성조기가 공식 시행됨. 미국 역사상 줄무늬가 13개를 넘은 유일한 국기로 1818년까지 23년간 쓰임. 이 깃발이 바로 1814년 포트 맥헨리 상공에 휘날리며 미국 국가의 영감이 된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 실물로, 현재 스미스소니언에 보존됨.

버몬트·켄터키의 연방 가입을 반영해 줄무늬와 별을 각각 15개로 늘리는 1794년 국기법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함. 새 국기의 시행일은 1795년 5월 1일로 정해졌으며, 주가 늘 때마다 줄무늬까지 함께 늘리려 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음. 줄무늬가 계속 불어나는 문제는 훗날 1818년 국기법에서 13개로 되돌려 해결됨.

대륙회의가 '13개 주의 국기는 붉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오는 13개 줄무늬로, 연합은 푸른 바탕의 흰 별 13개로 한다'는 국기 제정 결의를 채택함. 별과 줄무늬로 13개 식민지를 나타낸 이 결의가 성조기의 법적 출발점이 됨. 오늘날 미국은 이날(6월 14일)을 '국기의 날'로 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