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반민특위에 체포
이광수가 창씨개명 옹호와 지원병·학병 권유 등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 혐의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됨. 1949년 3월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같은 해 8월 불기소 처분.
이광수가 창씨개명 옹호와 지원병·학병 권유 등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 혐의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됨. 1949년 3월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같은 해 8월 불기소 처분.
안전보장이사회 제410차 회의에서 소련이 전달한 북한의 가입 신청을 신규회원국가입위원회에 넘길지를 논의했음. 위원회 회부안이 부결되면서 북한의 신청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음. 남한의 신청에 대한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는 날짜와 심사 단계가 다른 초기 가입 시도였음.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 계열 세력이 결합해 민주국민당을 결성함. 김성수는 창당을 주도하고 최고위원으로 활동함.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이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을 처음 신청했음. 국제사회의 승인과 다자외교 참여를 넓히려는 시도였지만,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회원 자격이 생기지는 않았음. 안전보장이사회의 심사와 추천, 총회의 결정이 뒤따라야 하는 가입 절차의 출발점이었음.
척 예거가 머록의 활주 지면에서 X-1 1호기를 직접 이륙시킴. 통상적으로 모기인 B-29에 매달려 고도까지 올라간 뒤 분리되던 X-1이 지상 출발도 가능함을 보인 시험이었음.
지상 이륙이 일반적인 운용방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제한된 로켓 추진 시간을 연구 고도에서 활용하기 위한 공중발사가 X-1 시험의 중심 방식으로 유지됐음.
하버드 계산연구실 총서 제17권 《Tables for the Design of Missiles》의 출간. 마크 1이 계산한 수치를 인쇄된 수표로 배포해 설계와 연구에 활용하는 방식의 사례로, 컴퓨터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기술자에게도 계산 결과를 제공한 전후 수치 계산 인프라의 모습.
전후 일본에서 학교교육법에 근거한 교과서 검정이 시작됨. 민간 출판사의 교과서를 국가가 심사하는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집필의 자유와 공교육의 공통 기준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름.
이는 이후 특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검정 의견과 국가의 개입 범위를 둘러싼 소송·외교 갈등이 전개되는 제도적 배경이 됨.
그레이엄-뉴먼이 자동차보험사 GEICO 지분에 투자함. 저평가 증권의 분산 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요한 기업 투자였으며, 그레이엄을 통해 GEICO에 관심을 갖게 된 워런 버핏의 투자 경력과도 연결됨.
파울 뮐러가 여러 절지동물에 대한 DDT의 강력한 접촉독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당시 감염병 방제 성과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보여 주는 수상으로, 후대의 장기 환경 위해성 판단과 구별되는 역사적 맥락.
관람객을 위한 시설 정비를 마친 라스코 동굴의 일반 공개 시작. 선사미술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확대되는 한편, 이후 동굴 환경 관리와 벽화 보존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
뉴욕 맨해튼의 팔라디움 볼룸은 1946년 개장한 뒤 1948년 전후 마치토·티토 푸엔테·티토 로드리게스 등 쿠바·푸에르토리코계 악단 공연을 중심으로 라틴 댄스의 핵심 무대로 자리 잡음. 인종·민족·계층을 넘나드는 관객이 함께 춤을 추는 공간으로 알려졌으며, 쿠바계 맘보가 뉴욕 대도시의 춤 문화로 확산되는 중요한 거점이 됨. 공연장 자체의 개장과 맘보 중심 프로그램의 형성을 구분함.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고 졸업함. 학사 학위 없이 입학한 지 3년 만에 법학 교육을 마침.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알프레드 샤힌이 어머니 메리 샤힌의 도움으로 호놀룰루에 자신의 기성복 의류 회사를 설립함. 샤힌은 알로하 셔츠와 여성복을 중심으로, 가족의 맞춤복 사업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성복 사업으로 확장함.
회사는 이후 ‘Shaheen’s of Honolulu’과 ‘Surf ’n Sand’ 브랜드를 통해 원단 디자인·실크스크린 인쇄·봉제·유통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수직 통합 체제를 구축함. 1949~1950년 수입 원단 공급이 막히자 고물상에서 구한 부품으로 염색·가공 장비를 제작해 자체 직물 생산에 나섰고, 이는 알로하 셔츠를 관광 기념품 수준에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패션 상품으로 끌어올리는 기반이 됨.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선거에 관한 사무를 행정기관인 내무부 산하 '선거위원회'가 관장함. 선거관리기구가 집행부에 소속돼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구조였음. 훗날 3·15 부정선거를 거치며 독립된 선거관리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배경이 됨.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계산에서 끝없이 나오던 무한대를, 재규격화 기법으로 제거해 정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함. 세 사람이 각자 다른 길을 거쳐 같은 이론에 도달했고, 파인만 다이어그램으로 대표됨. 이 공로로 셋은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음.
약 한 달 보름만에 계엄령 해제. 이 계엄령은 법적 근거 없이 선포된 불법적인 조치였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나은 학살의 배경이 됨.
참고로 계엄법은 1949년 11월 24일 법률 제69호로 최초로 제정.
미국 워싱턴 D.C.에서 사무엘 L. 잭슨 출생. 어머니와 외조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주요 생활 터전은 테네시주 채터누가.
유엔 총회가 한국 문제를 다룬 결의 195(III)를 채택했음.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할 수 있었던 지역의 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평가한 문서로, 뒤이은 가입 외교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 다만 이 결의가 대한민국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승인한 것은 아니었음.
유엔 총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결의 217 A(III)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함. 선언 제1조에서 모든 인간이 존엄과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천명하고, 제2조에서 인종·피부색·성별·언어·종교·출신 등에 따른 구별 없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명시함.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국제연맹 규약에 포함되지 못했던 인종적 비차별 원칙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적 국제인권 규범의 핵심 원칙으로 명문화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