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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8,168

정렬

1927 12건
99년 전

함석헌이 1927년 2월 김교신·송두용·류석동·정상훈·양인성과 함께 무교회주의 동인지 『성서조선』 창간에 참여함. 『성서조선』은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신앙·교육·민족 문제를 다룬 매체로,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1942년 폐간될 때까지 발행됨.

함석헌

일제강점기 서울 정동의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로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함. 방송망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KBS의 역사와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제 아래 운영된 식민지 방송이었음.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거쳐 방송망이 확대되었으며, 한국어 프로그램도 검열과 식민 통치의 제약을 받음. 해방 뒤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편되면서 방송의 운영 주체와 제도가 바뀌는 출발점이 됨.

1927년 2월 15일 국내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연합해 좌우합작 단체 신간회를 창립함. 중국 지역 민족유일당운동과 같은 민족협동전선 흐름 속에서 국내판 단일 전선으로 결성.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규모의 합법적 항일운동 단체.

조병옥
1926 8건
100년 전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을 원래 자리에서 해체하고 동쪽 궁성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김. 1926년 해체와 이듬해 이건으로 이어진 과정으로, 광화문은 궁궐 중심축의 정문이라는 본래 위치를 잃게 됨. 주변 전차선로와 도로의 확장은 월대와 궁장 등 남쪽 경관의 훼손에도 영향을 줌.

앨런 록히드가 캘리포니아에서 Lockheed Aircraft Company를 설립함. 1912년 형제의 초기 항공기 사업 이후 다시 시작한 회사로, 베가 등 민간 항공기를 기반으로 성장하다 대공황기의 파산과 1932년 재건을 거쳐 미국의 주요 항공우주 기업으로 발전함.

록히드 마틴 후신 기업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남.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던 중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피해를 입게 되는 인물. 훗날 전시 성폭력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증언자이자 인권운동가가 됨.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는 1926년 5월 1일, 김복동 공식 기념사업 사이트의 최근 약력은 1926년 4월 6일, 연합뉴스 등 당시 부고 기사들은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1926년 출생으로 기록.

상하이에서 1919년 8월 21일 창간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1926년 11월 26일 제198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재정난과 발행 여건의 악화 속에서 약 7년간 이어진 상하이 국한문판 발행 종료. 이후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뒤 1943년 다시 발간.

독립신문 상하이판

1924년 「민족적 경륜」을 둘러싼 논란으로 동아일보사를 떠났던 이광수가 1926년 11월 8일 편집국장으로 취임함. 이후 편집 책임자로 근무하는 한편 「마의태자」·「단종애사」·「이순신」·「흙」 등의 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

참고로 1923년 5월 16일 ‘촉탁기자’로 발령받아 12월 1일자로 ‘임(任) 기자’가 됐고 1926년과 29년 두 차례에 걸쳐 4년 6개월 여를 편집국장으로 재임.

조선어연구회 인사와 한글 연구자들이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서울 식도원에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리는 첫 '가갸날' 기념식을 열고 이날을 기념일로 정함. 일제강점기 우리말·글을 지키려는 운동에서 출발해 명칭과 기념 날짜가 여러 차례 변경된 뒤 오늘날의 한글날로 발전함. '가갸날 제정'과 첫 기념식이라는 사실을 함께 설명함.

조선통신중학관이 발간한 『조선시인선집』에 김명순의 시를 김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록.

선집에 참여한 시인은 모두 28명으로, 김명순은 이 가운데 유일한 여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