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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873 1건
153년 전
1872 11건
154년 전

철도회사와 일부 정유업자의 우대 운임 협약인 사우스 임프루브먼트 계획이 펜실베이니아 독립 석유업자들에게 불러온 충격. 타벨은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비롯한 지역 사업자들의 불안과 분노를 지켜보며, 경쟁의 규칙이 일부 기업에 유리하게 바뀔 수 있음을 체감. 계획에 맞선 지역의 저항과 혼란은 석유산업의 성장을 단순한 성공담으로 볼 수 없게 만든 경험. 다만 훗날의 탐사보도는 어린 시절의 원한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임 계약과 조사 기록을 대조해 기업의 실제 행위를 입증하려 한 작업.

클리블랜드의 경쟁 정유업체 대부분을 사들이며 정유 부문 지배력을 크게 확대한 스탠더드 오일. 철도 운송량을 한데 모아 유리한 운임을 확보한 규모의 경제와 함께, 철도 리베이트와 경쟁 사업자에 대한 차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진 산업 집중의 전환점.

1866년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참여한 보존 검토를 거쳐 《다비드》를 아카데미아로 옮기기로 결정함. 에밀리오 데 파브리스가 작품을 위한 전용 전시 공간을 설계하는 계획도 함께 추진됨.

광장에 남겨 두어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는 것보다 원작의 장기적인 보호를 우선한 선택이었음. 실내 이전과 관람 환경 조성이 함께 추진되면서, 작품은 도시의 야외 상징물인 동시에 미술관에서 보존하고 감상할 핵심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됨.

다비드 (미켈란젤로)

조제프 루아가 옮기고 마르크스가 직접 검토한 프랑스어판이 1872~1875년 나누어 출판됨. 마르크스는 분책 방식이 노동자 독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하며 출판인 모리스 라샤트르의 계획을 지지함.

번역을 검토하면서 원문의 논증과 통계·역사 자료도 보완한 작업. 1875년 후기에서는 프랑스어판이 원문과 별도로 검토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하여, 단순 번역을 넘어 판본의 발전에 참여한 저작으로 자리매김함.

자본론 제1권

마르크스가 초판을 수정한 독일어 제2판을 간행함. 상품과 가치형태, 상품의 물신성 등을 다룬 앞부분의 설명과 장 구성을 다듬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과 가치의 관계를 더 분명히 제시함.

1873년에 쓴 후기에서 수정 내용과 연구 방법을 설명함. 단순한 재쇄가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논증을 다시 손본 판본으로, 초판과 후대 판본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

자본론 제1권

《자본론》 제1권의 러시아어 번역본이 봄에 출간됨. 마르크스는 이듬해 독일어 제2판 후기에서 3,000부를 찍은 러시아어판이 거의 소진되었다고 소개함.

독일어권 밖으로 독자층이 넓어진 초기 번역 사례이자, 러시아의 경제학 논쟁 속에서 책이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계기. 독일어권에서 시작된 논의가 다른 언어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읽히기 시작한 단계.

자본론 제1권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갑순. (~1961년)

1871 7건
155년 전

《미들마치: 지방 생활의 연구》를 1871년 12월부터 1872년 12월까지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출간. 별도의 분책을 순차적으로 발행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선보인 장편소설.

지방 도시의 여러 인물이 품은 이상과 실제 삶, 서로 얽힌 관계를 넓은 시야로 그린 작품. 도러시아의 이야기와 다른 인물들의 서사를 결합하며 한 공동체의 변화와 개인의 선택을 함께 조명한 구성.

조지 엘리엇

미국 시카고 디코븐가 일대에서 시작된 화재가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에 급속히 확산되어 도심 약 3.5제곱마일과 1만 8천여 채의 건물을 파괴함. 약 300명이 사망하고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집을 잃었으며, 이후 시카고의 도시 재건과 내화 건축·도시계획의 발전을 촉진한 대재난.

천왕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아들이자 청사진의 발명가 존 허셜. (1792년~)

1870 1건
156년 전

베시 로스의 손자 윌리엄 캔비가 펜실베이니아 역사협회에서 '할머니가 조지 워싱턴 등의 의뢰로 첫 성조기를 바느질했고 별을 오각형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공개 발표함. 1870년의 이 발표로 베시 로스 전설이 대중에 퍼졌으나 이를 뒷받침할 사료가 없어 현대 학자들은 정설로 인정하지 않음. 그럼에도 미국 건국 신화의 한 장면으로 깊이 자리 잡음.

성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