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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909년의 기록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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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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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조 모자 제조업체를 상대로 벌인 노동조합의 전국적 불매운동이 셔먼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뢰베 대 롤러 판결. 노조 조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쟁의가 주 경계를 넘는 상품 판매를 막는 결합으로 평가되어,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도 반독점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길을 연 결정. 기업 독점을 견제하려던 법이 노동자의 집단행동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드러낸 사례이며, 노동활동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후속 입법 논쟁과 맞닿은 사건.

1908년 2월 29일 원주진위대 출신 항일 의병장 민긍호가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붙잡힌 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 민긍호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해 원주진위대 봉기를 주도하고 강원도·경기도·충청도 등지에서 의병을 지휘한 인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08년 2월 29일을 사망일로 기록하나, 일부 국가보훈부 자료에는 2월 28일로 표기되어 날짜 이견이 있음. 원사료와 전투·체포 경과를 추가 대조할 필요.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여 부산과 신의주를 오가는 직통 급행열차 융희호가 운행을 시작함. 개별 노선의 개통을 넘어 한반도 남단과 서북단을 한 열차로 연결하는 장거리 수송망이 갖추어짐.

신의주는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었고 부산은 해상 교통과 이어지는 항구였음. 두 노선의 결합은 한반도 철도가 일본과 중국 동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축으로 편입되는 기반이 되었음.

1908년 6월 18일 서울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린 영국 법정이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배설에게 금고 3주와 6개월간의 선행 보증을 선고함. 통감부가 배설의 항일 언론 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지원을 문제 삼아 영국 사법당국에 처벌과 추방을 요구한 결과임. 배설은 상하이로 이송되어 복역했으며, 운동의 주요 보도·모금 거점이던 《대한매일신보》의 활동도 위축됨.

국채보상운동

WSPU가 조직한 여러 행진 대열이 하이드파크로 모여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함. 보라색·흰색·초록색과 수많은 깃발이 운동의 시각적 상징으로 활용됨. 공개 연설과 행진을 통해 지지자들의 규모와 조직력을 드러낸 행사였음.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존 D. 록펠러 주니어와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6남매 중 셋째로 메인주 바하버에서 태어남.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훗날 정치·자선·예술 후원의 발판이 된 배경 형성. 가문의 부와 공적 활동이 결합된 그의 생애의 출발점.

1908년 7월 12일 통감부가 《대한매일신보》 총무이자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검사원이던 양기탁을 의연금 횡령 혐의로 구속함. 통감부는 배설과 양기탁이 보관 중이던 국채보상금 3만 원을 임의로 소비했다고 주장함. 운동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조직을 분열시킨 이른바 국채보상금소비사건의 시작.

국채보상운동

윌리엄 C. 듀런트가 미국 미시간주에서 여러 자동차 제조사를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기 위한 지주회사 제너럴 모터스를 설립. 뷰익과 올즈모빌을 출발점으로 캐딜락 등 여러 브랜드를 편입하며 20세기 미국 자동차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는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