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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의 기록 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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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학순이 중국 만주 지린에서 출생함. 훗날 1991년 국내 거주 피해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나섬.

1924년 9월 통의부와 참의부의 갈등 속에서 참의장 채찬이 통의부원들에게 피살된 뒤, 『독립신문』은 10월 4일 제177호에 통의부 비판 사설 「남만사변을 듣고」와 참의부의 통의부 성토문을 게재함. 통의부 측은 11월 7개 단체와 연합해 반임정 선언과 『독립신문』 구독 금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함. 김승학은 이러한 반발 속에서 1924년 11월 15일 사장직을 사임하고 상하이를 떠남.

독립신문 상하이판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듯, 전자 같은 물질 입자도 파장 λ=h/p의 파동성을 가진다는 물질파 개념을 박사 논문에서 제안. 파동-입자 이중성을 물질 전체로 확장한 발상. 이 가설은 1927년 전자 회절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파동역학의 씨앗이 됨.

덴비가 장식용 화병·볼·담배 항아리 등에 '다네스비 웨어(Danesby Ware)' 상표를 붙여 선보임. 같은 시기 전통 솔트글레이즈 생산을 접고 다양한 색 유약 컬렉션으로 무게를 옮겨, 일렉트릭 블루 등 수집가들이 아끼는 라인을 내놓음. 실용 스톤웨어에서 색채를 입힌 아트·주방 도자기로 정체성을 넓힌 전환. 다네스비 웨어 명칭은 1924년경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쓰임.

함석헌이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제1부에 입학해 1928년 졸업함.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고, 김교신·송두용·정상훈 등과 교류하며 무교회주의 신앙을 받아들임. 제도 교회보다 성서 읽기와 개인의 신앙적 결단을 중시하는 관점이 이후 그의 종교사상과 사회 참여의 중요한 토대가 됨.

함석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