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정원」,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원」으로 특선함. 이혼 뒤에도 회화 작업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성과이며, 같은 작품으로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도 입선한 것으로 소개됨.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원」으로 특선함. 이혼 뒤에도 회화 작업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성과이며, 같은 작품으로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도 입선한 것으로 소개됨.
1931~1932년 겨울까지 사당의 보존과 카이로 운송이 이어진 발굴 사업의 마무리 단계. 1922년 발견 후 약 10년에 걸친 정리 과정은 수천 점의 유물을 안전하게 이동하고 기록하는 작업으로 확대되었으며, 주요 반출 뒤에도 석관 촬영 등 후속 기록 작업이 남아 있었던 상황.
1932년 1월 8일 한인애국단원 이봉창이 도쿄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짐. 폭탄은 일왕에게 명중하지 못했으나 일제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의거로 큰 충격을 줌. 김구가 주도한 한인애국단 의열투쟁의 첫 거사.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기획해 1920년대 유럽 모더니즘 건축을 소개함. 이 전시에서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화되어 건축 사조로 정착. 같은 해 세계 최초의 미술관 건축·디자인부가 신설되어, 건축과 디자인을 미술관의 정식 수집 영역으로 끌어들인 분기점.
재정난을 겪던 보성전문학교를 김성수가 주도한 중앙학원이 인수함. 김성수는 같은 해 6월 교장에 취임해 학교 운영과 시설 확충을 추진함.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1986년)
대한민국의 헌법학자, 정치인 갈봉근. (~2002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용곤. (~2019년)
일본의 음악가 토미타 이사오. (~2016년)
1932년 4월 26일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며 조국의 독립과 자유 회복을 위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겠다는 선서문에 서명함. 태극기 앞에서 수류탄을 들고 선서하는 사진을 남겨 거사의 각오를 분명히 함. 사흘 뒤 결행될 훙커우공원 의거의 직접적 준비 단계.
프랑스의 영화배우 아누크 에메. (~2024년)
윤봉길이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천황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 도중 물통을 위장한 폭탄을 투척, 일본군 요인을 폭살. 일본군사령관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중상 후 5월 24일 사망, 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는 즉사.
1932년 4월 29일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의 일본군 전승 기념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에 큰 타격을 입힘. 이 거사로 침체된 임시정부의 존재가 국내외에 각인되고 중국 국민정부가 임시정부를 본격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됨. 일제는 김구 체포에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음.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날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됨. 한국소년동맹회 지원금 전달차 이유필의 자택을 방문했다가 검거되어 국내로 압송됨. 그해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4년형을 선고받음.
스페인의 중령 안토니오 테헤로. (~2026년)
한인애국단원 이덕주와 유진식이 김구의 밀명을 받아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를 처단하고자 국내로 잠입함. 상하이 대한교민단 의경대 출신인 두 사람은 무장하고 거사를 준비하던 중 황해도 신천경찰서에 붙잡혀 목적을 이루지 못함. 이봉창·윤봉길 의거와 함께 추진된 한인애국단의 국내 요인 처단 작전의 하나.
미국의 영화배우 브루스 글로버. (~2025년)
캐나다의 저술가, 작가, 사학자 자크 라쿠르시에르. (~2021년)
미국의 정치가, 뉴어크의 첫 흑인 시장 케네스 A. 깁슨. (~2019년)
김구가 국제연맹 릿튼조사단이 방문하는 다롄에서 관동군사령관 혼조 시게루 등 일제 수뇌부를 처단하고자 최흥식과 유상근을 파견함. 두 사람은 폭탄을 지니고 거사를 준비했으나 최흥식이 임시정부로 보낸 전보가 단서가 되어 거사 이틀 전인 5월 24일 체포됨. 세계의 이목이 쏠린 국제 무대에서 항일 의지를 알리려던 한인애국단의 기획 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