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를 준주에서 정식 주로 승격시키는 대통령 포고령 공포 (Proclamation 3309).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됨.
1959년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
모리사키 가즈에가 여성 교류지 『무명통신(無名通信)』을 창간. 아내·어머니·주부라는 역할에 가려진 여성 자신의 경험과 말을 나누고,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놓치기 쉬운 성과 생활의 문제를 논의한 소규모 잡지.
소련이 바이코누르에서 루나 2호를 발사함. 세계시 6시 39분경 출발한 탐사선은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달과 만나는 직접 비행 경로에 들어감.
루나 1호가 달을 스쳐 지나간 것과 달리 이번 목표는 달 표면과의 충돌이었음. 발사에서 충돌까지 걸린 시간은 약 38시간 22분이며, 이틀에 못 미치는 비행으로 다른 천체까지 물체를 보낼 수 있음을 입증함.
루나 2호 발사체 상단, 나트륨 구름으로 비행 위치 표시
루나 2호를 달로 보내는 비행 중 발사체 상단에서 나트륨 약 1kg을 방출함. 세계시 18시 42분경 지구에서 약 15만 6,000km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밝은 구름은 지상 관측자가 비행 위치를 확인하는 데 쓰였음.
전파 신호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표지를 활용해 궤도를 추적한 실험이었음. 달에 도착한 뒤 촬영한 사진이나 달 표면에서 발생한 현상과는 구별됨.
루나 2호, 달에 충돌해 최초로 다른 천체에 도달
루나 2호가 모스크바 시각 9월 14일 0시 2분경 달 표면에 충돌함. 세계시로는 9월 13일 21시 2분경에 해당하므로, 자료에 나타나는 두 날짜는 서로 다른 사건을 뜻하지 않음. 여기서는 모스크바 시각을 기준으로 날짜를 표시함.
인류가 만든 물체가 다른 천체 표면에 처음 도달한 순간이었음. 안전하게 내려앉는 연착륙은 아니었고, 탐사선은 충돌하면서 기능을 멈춤. 달에 가까워지는 동안 얻은 자기장과 방사선 관측 자료는 지구 주변과 다른 달의 환경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음.
조드럴 뱅크, 루나 2호의 달 충돌을 도플러 관측으로 확인
조드럴 뱅크의 J. G. 데이비스가 전보를 통해 루나 2호의 도플러 기록이 달 충돌을 입증한다고 설명함. 천문대는 소련이 제공한 주파수와 방향 정보를 이용해 탐사선을 추적했으며, 9월 13일 세계시 21시 2분 23초에 신호가 끊어진 사실도 관측했음.
도플러 관측은 탐사선의 움직임에 따라 수신 전파의 주파수가 달라지는 현상을 이용함. 발사국 밖의 관측 기록이 성공 주장과 일치했다는 점에서, 우주경쟁 속 기술적 성과를 독립적으로 확인한 사례였음.
제록스 914의 공개 발표
할로이드제록스가 일반 용지에 자동으로 복사할 수 있는 사무용 복사기 제록스 914를 공개함. 특수 처리 용지나 별도의 현상 과정에 의존하던 사무실에서 원고를 놓고 버튼을 눌러 복사하는 방식을 제시함. 분당 7장의 복사 성능을 갖춘 이 제품의 공개는 1960년 고객 배송에 앞선 발표 단계.
첫 시험위성 트랜싯 1A의 궤도 진입에 실패함
케이프커내버럴에서 트랜싯 1A를 발사했으나 궤도에 올리지 못함. 실험 단계의 첫 실패였으며, 이후 위성들은 항법 신호와 궤도 추적 등 필요한 기능을 차례로 시험하도록 설계됨.
뱅가드 3호 발사
미국의 과학위성 뱅가드 3호가 궤도에 진입해 지구 자기장과 우주환경 관측을 수행함. 프로젝트 뱅가드의 마지막 성공적 위성 발사로, 이 비행 이후 프로젝트의 비행 프로그램이 사실상 종료됨.
로스앤젤레스에 설립한 아메리칸 혼다가 직원 8명으로 미국 판매를 시작한 사건. 무역상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판매와 부품·정비를 직접 조직하려는 해외 진출 방식. 초기 드림·벤리의 과열 문제로 차량을 일본에 되돌리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작고 조용한 슈퍼 커브를 일상용 이동수단으로 소개하면서 시장 개척의 방향을 전환. 이후 친근한 이용자 이미지를 내세운 광고와 판매점 확대로 소비층을 넓힌 기반.
소련, 달 뒷면 촬영을 위한 루나 3호 발사
바이코누르에서 질량 278.5kg의 루나 3호를 8K72 로켓으로 발사함. 달에 충돌하는 앞선 루나 2호와 달리, 달을 지나가며 사진을 촬영하고 그 자료를 지구로 보내는 임무였음. 사진장치뿐 아니라 우주방사선과 미소운석 등을 관측하는 장비도 탑재함.
루나 3호, 달 남극 부근을 지나 뒷면 촬영 경로 진입
루나 3호가 달 남극 쪽을 근접 통과한 뒤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면을 관측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함. 달에 착륙하거나 달 주위를 계속 도는 궤도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지구 중심의 길쭉한 궤도에서 달을 스쳐 지나간 임무였음. 다음 날 촬영을 위해 조명 조건과 카메라 방향을 맞추는 단계였음.
루나 3호,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촬영
소련의 무인 달 탐사선 루나 3호가 달을 돌아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 뒷면을 인류 최초로 촬영함. 약 40분 동안 29장의 사진을 촬영해 달 뒷면의 약 70%를 기록했으며, 이후 달 지형 연구와 우주경쟁의 중요한 이정표가 됨.
달을 지나간 루나 3호가 카메라의 방향을 맞추어 뒷면을 촬영함. 사진에는 지구에서 이미 알던 앞면의 일부도 포함되어, 낯선 뒷면 지형의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용할 수 있었음. 촬영 당시 필름에 남긴 영상과 나중에 지구에서 수신한 영상은 구분할 필요가 있음.
지상 관측소, 루나 3호의 달 뒷면 영상 첫 수신
달 뒷면을 촬영한 필름을 탐사선 안에서 현상·정착·건조한 뒤, 영상을 줄 단위로 읽어 무선으로 전송함. 오늘날 디지털 사진을 파일로 보내는 방식과 달리 필름 처리와 통신이 함께 성공해야 했던 과정임.
NASA의 탐사사에는 10월 8일 첫 영상 수신이 기록되어 있고, DLR은 10월 18일 17장 전송을 기록함. 이 날짜는 NASA가 기록한 첫 수신일이며, 뒤이어 이루어진 전송 성과와 구분됨. 수신 영상은 흐리고 잡음이 많았지만 뒷면의 주요 지형을 판독할 수 있었음.
쿠사마 야요이, 뉴욕 첫 개인전에서 ‘인피니티 네트’ 발표
뉴욕 브라타 갤러리에서 첫 뉴욕 개인전을 개최하고 화면을 반복되는 미세한 그물 구조로 뒤덮는 ‘인피니티 네트’ 회화를 집중적으로 발표함. 이후 쿠사마의 대표적인 회화 언어로 자리잡음.
윌리엄 깁슨의 희곡 《미라클 워커》가 뉴욕 플레이하우스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초연을 시작함. 아서 펜이 연출을 맡았으며, 이 프로덕션은 이듬해 토니상 작품상과 연극 연출상 등을 수상함.
1959년 10월 21일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설계 신축 건물이 개관. 나선형 동선과 독특한 외관으로 현대 건축과 미술관 전시 공간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김말룡 등을 중심으로 대한노총과 별도의 중앙 노동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된 사건. 정치적 중립과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내세운 조직으로, 대한노총 내부의 지도체제 갈등에서 분립한 전국노협의 출범.
임송자의 연구에서는 결성 단계의 참여 규모를 14개 노동조합으로 파악. 이후 대한노총과 1960년 통합대회를 추진한 단체이며, 1990년의 전노협과는 별개.
덴비, 인근 랭글리밀 포터리 인수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인근의 랭글리밀 포터리(Langley Mill Pottery)를 인수함. 전후 테이블웨어 수요 확대에 대응한 설비 확충으로, 1950~60년대 디자인 전성기를 뒷받침한 기반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