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50–1959년의 기록 341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50 · 47건
관련 엔티티
135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87%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50 · 47건

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파키스탄·필리핀·태국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동남아시아 집단방위조약, 이른바 마닐라 조약에 서명.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억제한다는 냉전기 집단방위 구상 아래 체결된 조약으로,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의 법적 기반이 된 협정.

조약은 1955년 2월 19일 발효되었고 이후 방콕에 본부를 둔 SEATO가 운영되기 시작. NATO와 달리 상설 통합군 체계가 약하고 회원국 구성이 지역 현실과 어긋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으며, 베트남전쟁 이후 결속력이 약화되어 1977년 기구 해체로 이어진 냉전기 아시아 안보체제의 출발점.

세계적 텍스타일 디자이너 티보 라이히의 스튜디오 도자기 '티고 웨어(Tigo Ware)'를 1954년부터 덴비가 생산하기 시작함. 라이히가 1952년 직접 만든 이 레인지는 수요가 그의 작업장을 넘어서자 덴비로 생산이 옮겨졌고, 흰 점토 바탕을 긁어 드러내는 스그라피토 기법과 헝가리 민속 예술에서 영감받은 모던한 1950년대풍이 특징. 콩코드 좌석 원단·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코번트리 대성당을 디자인한 라이히와의 협업으로 덴비가 모더니즘 디자인 지형에 이름을 올림.

덴비 포터리 컴퍼니

브루스 리 재단은 이소룡이 13세 무렵인 1954년 홍콩에서 엽문 계보의 영춘권 수련을 시작했다고 소개함. 근접전과 중심선 운용을 중시하는 영춘권은 훗날 자신의 무술 표현을 발전시키는 주요 기반이 됨. 다만 일부 자료는 시작 시점을 1953년 또는 1956년으로 기록해 세부 연도에는 이견이 존재함.

영춘권

홍콩 영춘체육회 연혁은 1954년 청년 황순량이 엽문의 무관을 찾아 대련을 거친 뒤 문하에 입문했다고 기록함. 이후 황순량은 여러 비무에 나서며 홍콩에서 영춘권의 실전성을 알린 대표 제자로 알려짐. 당시 문파가 도전과 비무를 통해 명성을 넓히던 홍콩 무술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

영춘권

1954년 2월 20일 카네기 홀에서 맘보-룸바 페스티벌이 매진 공연으로 열림. 티토 푸엔테, 힐베르토 발데스의 25인조 오케스트라, 조 로코 퀸텟, 푸피 캄포 오케스트라 등이 출연함. 이후 브루클린 파라마운트 극장과 할렘 아폴로에서의 공연으로도 이어지며 맘보의 주류 공연장 진입이 계속됨.

제27회 아카데미상에서 《이창》이 감독·각색·컬러 촬영·녹음 등 4개 부문 후보로 지명됨. 앨프리드 히치콕은 감독상 후보, 로버트 버크스는 컬러 촬영상 후보로 지명됨. 존 마이클 헤이스의 각색과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사운드 부서의 녹음도 후보로 기록됨.

이창 (1954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