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연합회의, 국제지구물리관측년 특별위원회 설치
국제학술연합회의(ICSU)가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을 준비할 특별위원회(CSAGI)를 설치함. 로이드 버크너와 시드니 채프먼 등이 제안한 국제 공동관측 계획을 구체화하고 각국 과학기관의 참여를 조정하기 위한 위원회.
국제학술연합회의(ICSU)가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을 준비할 특별위원회(CSAGI)를 설치함. 로이드 버크너와 시드니 채프먼 등이 제안한 국제 공동관측 계획을 구체화하고 각국 과학기관의 참여를 조정하기 위한 위원회.
이승만은 대통령 재선을 위한 직선제 개헌을 관철하려고 임시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압박했음.
1952년 5월 25일 0시,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과 경남·전남·전북 일부 지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됨.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당시 제도 아래 재선이 어려워진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 있었음. 국회의 내각책임제 개헌 움직임과 이승만의 집권 연장 시도가 충돌하면서 헌정 위기가 발생했음.
계엄 아래 야당 의원들이 체포되었고, 5월 26일에는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버스가 헌병대로 끌려감. 이승만은 5월 27일 성명에서 게릴라 활동과 공산 세력의 연계를 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웠음. 그러나 실제로는 야당의 대통령 교체·내각책임제 개헌 움직임을 공산주의 음모와 결부시킨 사건 조작과 의원 탄압이 벌어졌음.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에 동의하지 않으면 국회를 해산시키겠다고 압박했으며, 부통령 김성수는 의원 체포에 항의해 사임했음.
미국과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도 계엄과 의원 체포에 우려를 표시했음. 국회 해산은 실행되지 않았으나, 의회에 대한 강압은 7월 4일 발췌개헌안 통과까지 이어짐. 부산정치파동은 전쟁 중의 비상권력이 대통령의 재선과 헌법 변경을 위해 사용된 사건이었음.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재성.
대한민국의 배우 김영일. (~2003년)
부산 일대 계엄 선포와 국회의원 연행 등 국회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던 부산정치파동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비판하며 국회에 부통령 사임서를 제출함.
2호 원자로에서 예상하지 못한 온도 상승이 나타났으며, 뒤이어 정지 상태의 1호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됨. 흑연에 축적된 위그너 에너지의 방출이 원인으로 파악되면서, 이를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가열 작업이 운영 절차에 포함되었음.
일본의 음악가 다카하시 유키히로. (~2023년)
대한민국의 대학 총장, 전 국회의원 김석준.
미국 의회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거부권을 재의결하여 매캐런-월터법을 성립시킴. 아시아계에도 귀화의 길을 열었지만 출신국별 이민 할당은 유지하였으므로, 귀화 자격의 평등과 입국 기회의 평등이 서로 다른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전환점이었음.
국회가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 국무원에 대한 불신임제 등을 결합한 발췌개헌안을 가결한 사건. 이승만이 요구한 직선제와 야당이 제기한 의원내각제 구상의 일부를 발췌하여 묶은 제1차 헌법 개정. 국회 의결은 7월 4일, 개정헌법 공포는 7월 7일로 구분.
국회에서 재선이 어려워진 이승만이 선출 방식을 바꾸려던 상황에서 계엄과 국회의원 체포, 국회해산 압박이 동반된 부산정치파동.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위축된 가운데 재석 166명 중 163명의 찬성으로 통과된 개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제도를 처음 도입했으나 집권자의 재선을 위한 강압적 개정이라는 문제를 함께 남긴 사건. 이승만이 8월 5일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는 제도적 기반.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 ECSC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의 출발점이 된 기구.
1952년 7월 24일 미국 켄터키주 출생
1952년 3월 쇼가쿠칸 사옥을 떠나 목조 3층의 독립 사옥으로 이전함. 8월 《묘조》를 ‘꿈과 희망의 오락 잡지’라는 표어로 창간함. 창간호 표지에 영화배우 쓰시마 게이코를 기용하며 영화 배우 중심의 화보 편집을 선보임.
CBC/Radio-Canada의 몬트리올 방송국 CBFT가 정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사건. 캐나다 국내에서 정규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첫 사례로, 개국 당시 영어와 프랑스어 프로그램을 함께 편성했으며 이틀 뒤 토론토의 CBLT가 방송을 시작함. 캐나다 텔레비전 시대의 출발점.
1952년 10월 3일 영국이 서호주 몬테벨로 제도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인 허리케인 작전을 실시함.
허리케인 작전은 영국의 독자 핵무기 개발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으로, HMS Plym 선체 내부에 핵장치를 설치해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됨. 이 성공으로 영국은 미국과 소련에 이어 독자적인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으며, 냉전기 핵전력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함.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 백마고지 일대에서 국군 제9사단과 중국인민지원군이 벌인 치열한 고지전.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장기화되던 시기, 철원평야를 감제하는 395고지를 둘러싸고 국군 제9사단과 중국인민지원군이 반복적으로 고지를 빼앗고 되찾는 전투를 벌임. 열흘간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격전 끝에 국군이 고지를 방어했으며,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후반부 고지쟁탈전을 대표하는 전투로 기록됨.
노먼 조지프 우드랜드와 버나드 실버가 물체를 식별 패턴으로 자동 분류하는 ‘Classifying Apparatus and Method’ 특허(미국 특허 2,612,994)를 취득함. 이 발명은 이후 바코드와 자동식별 기술이 유통·물류 산업에 확산되는 기술적 기반 가운데 하나가 됨.
벨기에 브뤼셀에서 국제지구물리관측년 특별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림. 태양활동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1957~1958년을 공동관측 기간으로 준비하고 지구물리학 여러 분야의 연구와 자료 교환을 논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