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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요헤이
인물

고노 요헤이

河野 洋平こうの ようへいjaYohei Konoen

1937년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에서 정치인 고노 이치로의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14선 중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의 보수 정치인. 1967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불거진 자민당의 금권부패를 비판하며 탈당해 신자유클럽을 창당하고 대표를 맡았으며, 1986년 자민당에 복당한 인물.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관방장관에 취임하였고, 1993년 8월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인정하며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를 발표함. 같은 해 자민당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잃은 직후 제16대 자민당 총재에 올랐으나, 총리대신을 거치지 못한 최초의 자민당 총재로 남음. 이후 무라야마·오부치·모리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지냈고, 2003년 제71·72대 중의원 의장에 취임해 2,029일간 재임한 뒤 2009년 정계를 은퇴함.

자민당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이자 호헌론자로서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역사 문제에 대한 대화와 화해를 강조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음. 그의 이름을 딴 고노 담화는 한일 관계와 일본의 전후 역사 인식에서 핵심적인 준거로 남았으며, 아들은 외무대신·방위대신을 지낸 고노 다로. 2026년 6월 89세로 별세.

16 타임라인
3 사실

타임라인

16
1937 1건
89년 전

정치인 고노 이치로의 아들로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에서 태어남. 부친 고노 이치로는 건설대신·부총리 등을 지낸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훗날 그 정치적 기반을 물려받게 됨. 일본 정계의 대표적 정치 가문에서 성장한 출발점.

1967 1건
59년 전

1965년 별세한 부친 고노 이치로의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당선됨. 와세다대학교 졸업 후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전신 회사에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경로. 이후 42년여에 걸쳐 14차례 연속 당선되며 장수 의원의 길을 시작한 사건.

1976 1건
50년 전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드러난 자민당의 금권부패를 비판하며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자유클럽을 결성해 대표에 취임함. 정치 개혁과 청신함을 내세운 보수 신당으로 주목받음. 기성 보수 정치에 대한 반발을 상징한 사건.

1986 1건
40년 전
1992 1건
34년 전
1993 3건
33년 전

일본 정부 관계자 5명이 서울 용산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닷새간 비공개로 피해 생존자 16명의 증언을 직접 들음. 일본 정부가 피해자 증언을 공식 청취한 절차로, 대표단은 일정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진상규명 노력을 약속함. 다만 2014년 일본 정부 검증 보고서에 따르면 고노 담화 초안은 청취 종료 전 이미 작성되었고, 청취 내용에 대한 사후 대조 조사는 실시되지 않은 경과.

1993년 7월 3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와타나베 미치오를 꺾고 총재에 당선됨. 자민당이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정권을 잃고 야당으로 전락한 직후 당을 이끌게 된 자리. 그러나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성립으로 그는 총리대신을 거치지 못한 최초의 자민당 총재로 남음.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함. 담화는 위안소의 설치·관리와 여성들의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모집 과정에서도 감언·강압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사례가 많았고 관헌이 직접 가담한 사례도 있었다고 인정함.

고노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히고,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문제를 기억하겠다고 표명함. 김학순을 비롯한 피해생존자들의 공개 증언과 법적 투쟁, 군 관여 자료의 발견과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요구가 일본 정부의 기존 부인 입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 결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군과 관헌의 관여, 모집 과정의 강제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한 핵심 문서. 다만 법적 책임이나 국가배상 의무를 인정한 것은 아니어서 이후에도 책임 인정과 배상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됨.

1994 2건
32년 전

1994년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으로 출범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에서 외무대신 겸 부총리에 취임함. 자민당이 연립 여당으로 정권에 복귀하며 맡게 된 외교 사령탑. 이후 오부치·모리 내각에서도 외무대신을 거듭 지내며 일본 외교를 이끈 출발점.

1999 1건
27년 전
2002 1건
24년 전
2003 1건
23년 전
2009 1건
17년 전
2014 1건
12년 전

일본 정부 검증팀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교섭의 경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공표함. 보고서는 군 당국과 모집 업자의 관계, 모집의 강제성, 사죄와 반성 표현 등을 둘러싸고 양국 정부가 문안을 조율한 경위를 기술함. 한국 정부와 당시 한국 측 실무자들은 담화가 외교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검증이라며 반박한 상황.

2026 1건
올해

그 외 사실들

기록

  • 총재에 올랐으나 총리대신을 거치지 못한 최초의 자유민주당 총재.

  • 2,029일간 재임해 당시 일본 헌정 사상 최장 재임 중의원 의장 기록을 세움(이후 2020년 오시마 다다모리가 경신).

발언

  • 중의원 의장 취임 회견에서 "전쟁을 겪은 베테랑 의원들이 의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의회는 전쟁과 가혹한 전후를 겪은 이들의 기억을 새 세대로 잇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함.

    2003년 중의원 의장 취임 기자회견

    2003년 | 출처: Nikkei Asia 부고 (Kyo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