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참가 대표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대한민국이 일본과의 남자축구 결승에서 2대1로 역전승함. 이강인은 우승 선수단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정우영의 동점골과 조영욱의 결승골이 승리를 결정함.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대한민국이 일본과의 남자축구 결승에서 2대1로 역전승함. 이강인은 우승 선수단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정우영의 동점골과 조영욱의 결승골이 승리를 결정함.
대한민국이 부산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폴란드에 2 대 0으로 승리함. 주장 홍명보가 수비를 이끈 대표팀은 1954년 첫 출전 이후 기다려 온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두며 대회 출발을 승리로 장식함.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꺾었고, 손흥민은 추가시간에 두 번째 골을 넣음.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탈락시킨 승리였으나 대한민국도 앞선 두 경기의 패배로 조별리그에서 대회를 마침.
강원 동해안 산불 피해 이웃을 돕기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성금 1억5천만원을 전달함. 지역 재난에 대한 지원 활동으로, 경기장 밖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사용한 사례임.
샬럿에서 열린 MLS 올스타전에서 전반 두 골을 기록하고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됨. MLS 올스타팀 주장으로도 출전했으며, 북미 두 리그의 대표 선수들이 맞붙는 경기에서 득점력을 보여줌.
이강인이 런던에서 손흥민을 만나 직접 사과했다고 밝히고 대표팀 동료와 팬들에게도 사과함. 손흥민은 사과를 받아들였으며 이강인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요청함.
아시안컵 준결승 전날의 다툼이 알려지며 대표팀 내부 관계와 주장 역할을 둘러싼 비판이 확산된 뒤 나온 입장이었음. 이강인은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을 반성한다고 밝혔으며, 두 선수는 사진과 공개 입장으로 화해 사실을 전함.
선덜랜드 원정에 선발 출전하며 토트넘 선수로 첫 공식 경기를 치름. 오른쪽 공격을 맡아 새 전술과 리그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며, 팀은 1대0으로 승리함.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계약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성공적인 시기와 달리 새 팀에서는 부상과 출전 경쟁 속에 어려운 시즌을 보냈고, QPR도 2012-13시즌 강등됨. 선수 개인의 명성과 팀의 성적이 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경력상의 전환점임.
박지성이 QPR에서 PSV로 한 시즌 임대 복귀함. 유럽 진출 초기에 성장했던 구단으로 돌아와 경험 많은 선수의 역할을 맡음. 이 시즌은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이 됐으며, 첫 PSV 시기의 도약과는 다른 경력 후반의 귀환이었음.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팟캐스트에서 자신과 관련된 응원가에 포함된 한국인 비하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함. 과거에는 응원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경험과 인식의 변화를 설명함. 팬 문화의 애정 표현도 당사자와 다른 아시아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공론화한 발언이었음.
박지성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혁신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으며 이영표도 위원으로 참여함. 축구 행정의 신뢰 회복과 유소년 육성 등을 논의하는 한시적 자문기구로, 협회의 결정을 직접 강제하는 조직은 아니라고 설명됨. 사전 예고와 달리 최휘영 장관은 공동위원장이 아닌 위원으로 참여함.
명지대학교에서 뛰던 박지성이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진출함. 이후 팀의 2부리그 강등과 2001년 승격을 모두 경험하며 경기 출전과 역할 변화 속에서 성장함. 한국 프로리그를 거치지 않고 일본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그의 해외 진출 경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임.
박지성이 스포츠 경영·법률·인문 분야를 다루는 FIFA 마스터 과정을 이수함. 현역 은퇴 후 선수 경험에 더해 스포츠 조직의 운영과 제도를 공부했으며, 이후 축구협회와 구단 행정에 참여하는 길로 나아감.
박지성이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천황배 결승에서 헤더 동점골을 넣었고, 교토는 2-1 역전승으로 우승함.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 치른 일본에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음. 유럽으로 떠나기 전 소속팀에 첫 주요 컵대회 우승을 남겼다는 의미가 있음.
JTBC가 박지성을 2026년 월드컵 중계 메인 해설위원으로 발표함. 이전 월드컵에서의 방송 경험에 이어 경기의 전술과 선수 판단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음. 구단·협회 행정과 더불어 시청자에게 축구를 전달하는 방송 활동도 이어 간 사례임.
박지성이 유스전략본부장에서 사임함. 해외 거주로 업무를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배경으로 알려졌음. 협회 유소년 전략 책임자로서의 활동은 마무리했지만 이후 전북 현대와 국제 축구 기구에서 행정 활동을 이어 감.
박지성이 아시아 축구 환경 개선과 어린 선수 지원을 목적으로 JS파운데이션을 설립함. 현역 선수일 때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자선경기와 장학 지원으로 이어짐. 은퇴 이후의 공적 활동을 이해할 때도 경기장 밖 역할이 이미 이 시기부터 확장되고 있었음을 보여 줌.
대한민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16강에 진출함. 주장 박지성과 측면 수비수 이영표가 함께 출전했으며, 개최국이었던 2002년과 달리 해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처음 조별리그를 통과한 성과였음. 날짜는 경기 개최지 기준임.
박지성이 위원장으로서 AFC 프로축구위원회 회의를 이끎. 아시아 클럽 대회의 참가 배분과 구단 라이선싱 등 제도 관련 안건이 논의됨. 선수 시절 유럽 무대 경험을 넘어 아시아 축구의 운영 체계에 참여한 사례임.
박지성이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에서 A매치에 처음 출전함. 대학과 일본 프로 무대에서 성장하던 시기에 대표팀 기회도 얻었으며, 이후 2002·2006·2010년 세 차례 월드컵을 경험함. 대표팀에서의 최종 기록은 100경기 13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