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지복영.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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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배우 미후네 도시로. (~199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3·1독립선언 1주년을 맞아 첫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함. 임시정부 주최 기념식과 교민단 주최 축하식, 시가행진·기념공연 등이 열렸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날을 '국경일'로 부르며 경축함. 임시정부 시기 3·1절의 정식 명칭은 '독립선언일'이었으며, 이날이 해마다 기념되는 민족 명절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됨.
일본의 압력을 받은 장쭤린 휘하 동북3성 군벌 측 중국 당국이 신흥무관학교를 수색하고 폐쇄 명령. 당시 교장 이세영과 교사 이범석은 삼원보 방면으로 피신.
이 사건은 한족회 해산 명령과 함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에 가해진 중국 관헌의 탄압 일부. 학교는 즉시 완전히 해산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일제·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과 피신을 거쳐 1920년 여름 운영 종료로 이어짐.
미국시민자유연맹 설립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설립 과정에 도움을 줬으며 창립 멤버 65명 중 한 명이고, 초기 집행 위원회(national committee) 위원으로 활동.
함석헌이 평양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함. 일제 학교 당국이 반성문을 쓰면 복학시켜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이를 거부해 퇴학당한 것으로 전해짐. 이후 약 2년간 수리조합 사무원과 소학교 교사로 일한 뒤 오산학교로 진학함.
한족회가 설치한 군정부가 1919년 11월 서로군정서로 개편. 이상룡이 독판, 여준이 부독판, 지청천이 사령관을 맡으며 남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군정 조직 구성.
신흥무관학교는 서로군정서의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기능. 학교 운영 인사와 졸업생들이 군정서의 지휘부와 군사 조직에 참여하며, 교육기관·자치기관·독립군 조직이 결합한 체제 형성.
창간 이래 한자 제호 ‘獨立’으로 제21호까지 발행하던 신문이 제22호인 1919년 10월 25일부터 ‘獨立新聞’으로 제호 변경. 이 한자 제호는 제168호까지 유지되었고, 제169호인 1924년 1월 1일부터 한글 제호 ‘독립신문’으로 다시 변경.
D. W. 그리피스 감독의 무성영화 《흩어진 꽃잎 (Broken Blossoms)》 미국 개봉. 백인 배우 리처드 바설메스가 런던에 거주하는 중국인 남성을 연기하고, 학대받는 백인 소녀를 보호하다 비극을 맞는 인물로 묘사한 작품.
《치트》의 위협적인 아시아 남성과 달리 온순하고 희생적인 중국인 남성을 제시했으나, 인물을 고유한 이름보다 ‘황인종 남자’로 지칭하고 동양인을 수동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처리한 한계. 적대적 황화론과 동정적 오리엔탈리즘이 서로 다른 형태로 공존한 사례.
파리에서의 외교 활동을 마친 김규식이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구미위원부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청하고,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독립공채 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 전달.
1919년 8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이 상하이 프랑스 조계 동익리에서 창간. 이광수가 사장 겸 주필을 맡고, 주요한·이영렬 등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함. 상하이 망명 지사들이 국내외 소식과 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싣던 등사판 신문 《우리 소식》을 발전시킨 매체로, 민족사상 고취와 독립운동 소식의 국내외 전파를 발간 목표로 제시함.
1919년 1월 18일 개막한 파리 강화 회의, 한국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지 않은 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 함께 폐막.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독립 청원서와 항고서를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에 한국 문제의 의제 상정을 요청했으나, 승전국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원칙이라는 한계가 드러났으며,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도 큰 타격을 받음.
영국의 배우 준 스펜서. (~2024년)
신흥중학교가 고산자로 이전해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지청천이 연성대장으로, 윈난강무학교 출신 이범석·러시아군 장교 출신 김경천 등이 교관으로 참여.
장교·하사관 양성 과정에서 전술·병학·지휘 교육을 담당하며 학교의 군사교육 체계 강화. 지청천은 이후 교성대장을 거쳐 서로군정서 사령관으로 활동.
이범석의 신흥무관학교 교관 활동은 1919년 10월에도 확인됨.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양한묵. (1862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리버라치. (~198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총장 겸 파리 주재위원인 김규식,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와 「한국 독립 항고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 『한국 독립과 평화』를 비롯한 홍보 문서도 각국 대표와 언론에 배포하며 일제 식민 지배의 실상과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림. 한국 문제가 강화 회의의 정식 의제로 채택되지는 못했으나,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한국인의 독립 요구를 국제사회에 전달한 대표적인 외교 활동.
그리스의 독재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