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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72 20건
54년 전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이 주요 지분을 보유하던 블루칩 스탬프스를 통해 초콜릿 제조·판매업체 시즈 캔디를 약 2,500만 달러에 인수.

당시 시즈 캔디는 장부상 유형자산에 비해 인수 가격이 높았지만, 멍거는 회사가 가진 강력한 브랜드와 가격 결정력 등 무형의 경쟁우위를 높게 평가.

시즈 캔디 인수는 버핏과 멍거가 '평범한 기업을 매우 싼 가격에 사는 투자'에서 '훌륭한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투자'로 전환하는 상징적인 사례가 됨.

찰리 멍거 투자자

1967년 UCLA 대학원에 진학해 1970년 석사, 1972년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레너드 클라인록의 데이터 패킷 네트워킹 연구 그룹에서 아르파넷 초기 연구와 연결 작업에 참여했으며, 이 시기 로버트 칸과 교류하며 이후 인터넷 프로토콜 공동 연구로 이어지는 기반을 마련함.

빈트 서프

1972년 조선일보 주미 특파원으로 부임해 1979년까지 워싱턴에서 활동함. 미국 정치와 외교, 한미관계를 현장에서 취재했으며, 훗날 그의 친미·안보 중심 논평과 국제정세 인식에 중요한 경험적 기반이 된 시기라 추정할 수 있음.

모리스 창은 1972년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의 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해 반도체 사업부를 총괄. 당시 TI 반도체 사업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제조 조직 가운데 하나였으며, 창은 제조·제품·영업을 아우르는 경영 책임을 맡음.

모리스 창

앨런 케이가 이끈 제록스 PARC 학습연구그룹이 스몰토크-72를 구현함. 이는 스몰토크-71의 초기 설계 구상을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그래밍 환경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구현 단계였음.

스몰토크-72는 객체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 그래픽 화면에서의 직접 조작, 프로그래밍과 실행 환경의 긴밀한 결합을 실험함. 이후 스몰토크-76과 스몰토크-80으로 이어지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의 실질적 출발점이 됨.

앨런 케이가 제록스 PARC 학습연구그룹에서 메시지 전달을 중심 원리로 하는 스몰토크의 초기 설계를 주도함. 객체를 독립적인 계산 단위로 보고, 각 객체가 메시지를 통해 협력하도록 하는 언어·환경을 구상한 작업.

댄 잉걸스가 초기 인터프리터와 구현을 맡고, 아델 골드버그가 문서화와 교육적 활용을 이끌며 스몰토크를 발전시킴. 스몰토크는 동적 객체지향 언어와 통합 개발 환경의 초기 완성형으로 자리 잡으며, 이후 프로그래밍 언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에 큰 영향을 남김.

앨런 케이 스몰토크

앨런 케이가 1972년 논문 《A Personal Computer for Children of All Ages》에서 다이나북(Dynabook) 구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함. 다이나북은 어린이를 포함한 개인이 휴대하며 읽기·쓰기·그리기·프로그래밍·시뮬레이션에 활용하는 작은 컴퓨터이자, 학습과 창작을 위한 ‘동적 매체’로 설계됨.

논문은 컴퓨터를 전문가의 계산 장치나 사무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생각을 표현하고 세계를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적 매체로 바라봄. 이후 노트북·태블릿·전자책·교육용 컴퓨팅을 둘러싼 기술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준 개인용 컴퓨팅의 대표적 비전으로 평가됨.

앨런 케이

1969년 레이저로 복사기 드럼에 상을 그리는 발상을 낸 게리 스타크웨더가 1971년 PARC로 옮긴 뒤, 1972년 버틀러 램슨·로널드 라이더와 함께 제어계와 문자 생성기를 더해 EARS 프린터를 완성. 제로그래피에 레이저 주사를 결합한 이 방식은 이후 제록스 9700 레이저 프린터로 이어짐. 고해상도 디지털 인쇄 시대를 연 기술.

제록스 PARC

댄 잉걸스가 데이터 제너럴 노바에서 동작하는 스몰토크-72의 최초 인터프리터를 BASIC으로 구현함. 앨런 케이가 메시지 전달 기반 언어의 핵심을 “한 페이지 분량의 코드”로 만들 수 있다고 내기를 건 뒤, 잉걸스가 이를 실제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결과물.

이 인터프리터는 1972년 10월 처음으로 3 + 4를 평가했으며, 종이 위 언어 설계에 머물던 스몰토크를 실행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한 사건. 이후 스몰토크-72는 객체와 메시지 전달을 중심으로 한 스몰토크 계열의 실제 출발점이 됨.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준공되며 나프타분해시설과 계열 공장을 연결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일관생산체계가 확립되었다. 1967년 정부의 단지 조성계획 수립과 1968년 기공 이후 기초유분에서 합성수지·합성섬유 원료 등 유도품으로 이어지는 생산 기반이 형성되었고, 이후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대형화와 수출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회보장법 개정안(P.L. 92-603)에 서명해 연방 생활보조금(SSI) 제도를 신설하고, 주정부가 SSI 수급자를 메디케이드 대상자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함. 1974년 SSI 시행 이후 저소득 노인·시각장애인·장애인의 메디케이드 자격을 결정하는 핵심 경로로 자리잡음. 일부 주에는 1972년 당시보다 엄격하지 않은 기존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권이 부여됨.

대통령 박정희,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 4가지 비상조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
  • 일부 효력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하여 수행, 비상국무회의 기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
  •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까지 조국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안을 공고,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 국민 투표로 확정
  •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정된 헌법 절차에 따라 금년 연말 이전에 헌정 질서 정상화

CBS가 한국전쟁기 이동외과병원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드라마 《MAS*H》의 첫 회를 방송. 전쟁의 부조리와 의료진의 일상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해 다룬 작품으로 1983년까지 11시즌 동안 이어진 미국 텔레비전사의 대표작의 시작.

1972년 뮌헨 하계 올림픽 기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선수와 코치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사건은 다음 날 퓌르스텐펠트브루크 공군기지에서 벌어진 서독 경찰의 구출 작전 실패로 이어졌고, 인질 9명 전원과 경찰관 1명, 무장대원 5명이 사망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로 이후 국제 스포츠 행사 보안 강화의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