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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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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민간 승용차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수생산·강제노동 체제로 전환된 시기.

전쟁 발발로 국민차의 민간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용차와 군수품 생산 중심으로 전환. 유럽 점령지 출신 노동자·전쟁포로·강제수용소 수감자 등 약 2만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강제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약 3분의 2를 차지.

폰 미제스가 이스탄불 대학교 이학부 학술지에 논문 「Über Aufteilungs- und Besetzungswahrscheinlichkeiten」을 발표하며 생일 문제의 한 형태를 처음 활자화함. 이후 이 문제가 확률론 입문의 고전 사례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 첫 공식 출판.

생일 문제

초대 관장 바가 주도하고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피카소 40년의 작업을 망라함. 피카소를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시키며 이후 MoMA 회고전의 전형을 세움. 한 작가에 대한 재해석을 제도적으로 각인시킨, 국제적 주목을 받은 전시.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결성된 관변 유림 단체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로 선출됨. 전시체제 아래 유림을 황국신민으로 동원하기 위한 단체의 핵심 임원진에 합류함. 그가 친일 유림으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

이명세 (1893년)

경성 부민관에서 문인 약 250명이 참여한 조선문인협회 창립식이 열리고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광수가 회장에 선출됨. 이광수는 취임사에서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협회의 목적으로 제시함. 이후 전선의 일본군을 위한 위문문 모집과 문예 행사 등 문단 차원의 전쟁 협력을 이끈 친일 문인단체의 출범.

이광수 (춘원)

1939년 10월 16일 경학원에서 열린 전국 유림대회에서 조선유도연합회 결성이 결의됨. 미나미 지로(南次郎) 조선총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1932년 출범 뒤 유명무실해진 조선유교회를 대신해 전시체제의 유림 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됨.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 진흥과 황국신민화를 표방한 일제 말기 최대의 관변 유림 단체.

독일의 폴란드 침공 16일 뒤 소련군이 폴란드 동부 국경 전역을 넘어 진입.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을 동시에 상대하는 양면전 상황에 놓였고, 이후 독소 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설정된 세력권에 따른 폴란드 영토 분할로 연결된 사건.

캐나다 정부가 독일과 전쟁 상태에 들어갔음을 공식 선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확정. 영국이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한 뒤 캐나다 의회가 별도로 전쟁 참여를 논의했고, 9월 10일 조지 6세 명의의 포고로 캐나다와 독일 사이의 전쟁 상태가 공식화된 결정.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선전포고가 캐나다에도 곧바로 적용되었던 것과 달리,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이후 캐나다가 자국의 의회·정부 절차를 거쳐 독자적으로 전쟁을 선언한 첫 사례. 캐나다의 외교적 자율성과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가 실제 전쟁 결정에서 드러난 분기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하틀랜드 스나이더가 충분히 무거운 별이 에너지원 소진 뒤 계속 붕괴하는 과정을 일반 상대성이론의 장방정식으로 계산한 논문을 발표함. 이상화된 압력 없는 별의 모형에서 함께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붕괴가 유한한 고유시간 안에 진행되는 반면, 먼 관찰자에게는 표면이 중력반지름에 점근하는 것으로 나타남을 계산함. 후대에 블랙홀 형성을 설명하는 고전적 중력붕괴 모형으로 자리잡은 연구.

로버트 오펜하이머 일반 상대성이론

두 나라의 군사 정책 통합과 상호 군사 지원 의무를 규정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추축국의 기반을 다진 핵심적인 사건. 평화 시 정치·경제적 협력 강화, 어느 한쪽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즉각적인 군사적 지원 및 전시 생산 협력한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