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전 제공된 갤럭시 폴드 리뷰 제품에서 화면이 깨지거나 작동을 멈추는 문제가 잇따라 확인됨. 일부 사용자가 화면 보호필름처럼 보이는 필수 보호층을 벗겼고, 힌지 주변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간 사례도 드러남.
삼성전자가 당초 4월 26일로 예정했던 미국 출시를 연기하고 리뷰 제품을 회수함. 폴더블 스마트폰의 참신성보다 내구성·수리 가능성과 소비자가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초기 시장의 대표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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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전 제공된 갤럭시 폴드 리뷰 제품에서 화면이 깨지거나 작동을 멈추는 문제가 잇따라 확인됨. 일부 사용자가 화면 보호필름처럼 보이는 필수 보호층을 벗겼고, 힌지 주변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간 사례도 드러남.
삼성전자가 당초 4월 26일로 예정했던 미국 출시를 연기하고 리뷰 제품을 회수함. 폴더블 스마트폰의 참신성보다 내구성·수리 가능성과 소비자가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초기 시장의 대표적 실패.
삼성전자가 접으면 스마트폰, 펼치면 7.3인치 태블릿형 화면이 되는 갤럭시 폴드를 공개함. 화면을 안쪽으로 접고 외부에 별도 화면을 두는 인폴딩 구조와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하는 사용자 경험을 제시했으며, 약 2,000달러의 높은 가격에도 대형 제조사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첫 폴더블 제품으로 주목받은 발표.
삼성전자가 CES에서 휘어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제품을 공개함. 이후 갤럭시 폴드 발표 당시 삼성전자가 8년에 걸친 개발의 출발점으로 지목한 기술 시연으로, 유연한 화면을 실제 휴대기기 형태에 적용하려는 산업적 개발이 본격화된 계기.
중국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업 로욜이 7.8인치 화면을 바깥으로 접는 플렉스파이를 공개하고 개발자용 모델의 세계 주문과 중국 소비자용 모델 판매를 시작함. 주문 제품 출하는 같은 해 12월부터 시작됐으며, 실제 구매 가능한 폴더블 스마트폰이라는 선례를 만들었으나 거친 플라스틱 힌지와 미완성 소프트웨어로 혹평도 받은 초기 상용화 사례.
구글이 2027~2028년 핀란드의 데이터센터·전력망·청정에너지 기반시설에 130억 유로를 투자하고, 포르툼과 22년간의 원자력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한다고 발표. 로비사 원자력발전소 발전량의 최대 50%를 공급받는 계약으로, 구글이 미국 밖에서 체결한 최초의 원자력 전력구매계약.
유럽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확충이 장기적인 원전 전력 확보와 직접 결합된 대규모 기반시설 전환점. 국내총생산 기여액과 7천 개 일자리 창출은 기업·정부의 전망치이며 아직 실현된 성과는 아닌 상태.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가 2011년 채택한 시리아의 핵 안전조치 불이행 결정을 종료하는 결의안을 합의로 채택. 새 시리아 정부의 협조로 미해결 쟁점을 해소했으며, 2007년 이스라엘이 폭격한 데이르에조르 핵시설과 관련된 약 73t의 천연우라늄 금속을 IAEA 감독 아래 관리하기로 한 조치.
약 20년간 이어진 시리아 핵활동 조사를 공식적으로 마감한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이정표. 과거 조사 사안의 종결이며 시리아에 대한 정기적인 IAEA 안전조치와 핵물질 감독까지 종료된 것은 아닌 상태.
미국이 이란 원유 운반선 5척을 파괴한 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미국 함정 2척과 유조선 8척을 미사일·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발표한 국면. 선원 최소 1명 사망·1명 실종이 보도됐으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상황.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상선 공격 주장으로, 교전의 중심이 군사시설에서 국제 원유 수송망으로 확대된 전환점. 다만 이란의 선박별 타격 주장은 독립 확인이 제한된 상태이며, 미국은 자국 함정에 피해가 없었다는 입장.
아마존 레오와 아리안스페이스가 2029년부터 시행할 아리안 64 발사 6회를 추가 계약해 전체 계약 물량을 18회에서 24회로 확대. 아리안스페이스가 2026년 세 차례의 아리안 6 임무를 통해 아마존 레오 위성 100기를 발사한 뒤 이뤄진 계약 확대.
유럽의 아리안 6 생산·발사 수요를 장기간 확보하는 동시에 아마존의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 속도를 높이는 산업적 이정표. 추가 발사는 2029년 이후 예정된 계약 물량으로, 임무 수행과 위성 배치가 완료된 상태는 아님.
프랑스 마르세유 보메트 교도소에서 하미다 장두비에 대한 사형이 단두대로 집행. 프랑스에서 실제로 시행된 마지막 사형이자, 국가 형벌로서 단두대가 마지막으로 사용된 기록.
이후 프랑스에서는 사형 집행이 재개되지 않았고,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아래 사형제 폐지 법률이 제정되어 법적으로도 사형이 폐지됨. 1977년의 마지막 집행과 1981년의 제도 폐지가 연결되는 프랑스 형벌·인권 정책 변화의 중요한 기준점.
미국 발명가 엘리어스 하우가 재봉틀에 관한 미국 특허 제4,750호를 취득. 하우의 기계는 바늘실과 북실을 맞물리게 하는 잠금박음(lockstitch) 구조를 사용해 손바느질을 기계화하는 핵심 원리를 실용적인 형태로 구현한 장치.
재봉틀 자체의 최초 발명이나 최초 특허는 아니었지만, 하우의 구조는 이후 가정용·산업용 재봉틀의 표준 기술로 확산. 특허권을 둘러싼 장기간의 분쟁 끝에 1856년 여러 제조사가 특허를 공동 사용하기 위한 재봉틀 특허 풀을 구성하면서 미국 제조업의 초기 특허 공동관리 사례로도 이어진 기술·산업사의 분기점.
유엔 총회가 스위스의 가입을 만장일치로 승인하면서 스위스가 유엔의 190번째 회원국이 됨. 제네바에 유엔 유럽본부와 여러 국제기구를 두고 오랫동안 유엔 활동에 참여해 왔지만 정식 회원국은 아니었던 스위스가 다자외교 체제에 공식 편입된 시점.
가입은 같은 해 3월 국민투표에서 유엔 가입안이 통과된 결과로 이루어진 결정. 영세중립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온 스위스가 중립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유엔 회원국으로 국제협력에 참여하는 방향을 선택한 외교정책의 전환점.
캐나다 정부가 독일과 전쟁 상태에 들어갔음을 공식 선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확정. 영국이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한 뒤 캐나다 의회가 별도로 전쟁 참여를 논의했고, 9월 10일 조지 6세 명의의 포고로 캐나다와 독일 사이의 전쟁 상태가 공식화된 결정.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선전포고가 캐나다에도 곧바로 적용되었던 것과 달리,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이후 캐나다가 자국의 의회·정부 절차를 거쳐 독자적으로 전쟁을 선언한 첫 사례. 캐나다의 외교적 자율성과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가 실제 전쟁 결정에서 드러난 분기점.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 작품은 1939년 이후 미국에 머물렀고, 피카소가 스페인에 민주적 자유가 회복되기 전에는 귀환하지 않도록 뜻을 남긴 탓에 프랑코 정권 아래에서는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품.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화와 1978년 헌법 제정을 거쳐 반환 협상이 진전되면서 1981년 귀환이 성사. 작품은 카손 델 부엔 레티로에 설치되었고, 귀환 자체가 스페인의 민주화 전환과 망명·내전 기억의 복귀를 상징하는 문화정치적 이정표.
CERN이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의 27km 원형 가속기 전체에 처음으로 양성자 빔을 성공적으로 순환시킴. 오전 10시 28분 첫 빔이 전체 링을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하면서 20여 년에 걸친 설계·건설 단계에서 실제 가속기 운전 단계로 넘어간 이정표.
이 첫 빔은 즉시 고에너지 충돌 실험을 시작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후 빔 안정화와 충돌 에너지 상승, 2009년 본격 충돌 운전과 2012년 힉스 보손 발견으로 이어지는 LHC 과학 프로그램의 실질적 출발점.
1812년 전쟁 중 올리버 해저드 페리가 지휘한 미국 함대 9척이 이리호에서 로버트 헤리엇 바클레이가 지휘한 영국 함대 6척과 교전해 승리. 기함 《로런스》가 큰 피해를 입자 페리가 《나이아가라》로 옮겨 지휘를 계속했고, 결국 영국 전대를 항복시킨 해전.
승리로 미국이 이리호의 제해권을 확보하면서 영국군은 디트로이트와 북서부 전선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템스 전투의 조건을 마련한 1812년 전쟁 서부전선의 중요한 전환점.
유엔 총회가 결의 50/245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 찬성 158표, 반대 3표, 기권 5표로 가결되었으며, 모든 핵폭발 실험을 금지하는 국제 규범을 조약 형태로 확정한 다자 군축의 주요 분기점.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조약문에 대한 컨센서스 채택이 무산된 뒤 호주가 조약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해 표결로 채택을 이끌어낸 이례적 경로. 조약은 같은 해 9월 24일 서명을 위해 개방되었으며, 발효에는 부속서 2에 명시된 국가들의 전원 비준이 필요해 채택 이후에도 발효 요건 충족이 국제 군축의 과제로 남은 체제.
건설부가 대국토건설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재원 규모와 경제개발계획과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돼 전면 재검토됨. 이후 보다 현실적인 국토계획기본구상 수립으로 방향이 전환됨.
건설부가 계획 기간을 1972~1981년으로 정하고 산업 기반 확충, 교통·통신망 정비, 수자원 개발, 권역별 균형발전 등을 기본방향으로 설정함. 이후 부문별 계획과 투자 구상이 본격적으로 종합됨.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제1차 시안을 놓고 전문가 세미나가 열림. 계획의 기본 목표와 권역 구상, 산업·교통·수자원 부문을 검토하는 공론 과정의 하나였음.
국토개발연구원이 계획 기간 종료 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평가분석을 발간함. 기반시설 확충 성과와 함께 수도권·부산권 인구 집중, 지역별 달성도 편차, 생활환경 투자 부족 등을 사후 평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