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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2건
118년 전
1907 18건
119년 전

베른 특허국에 재직하던 아인슈타인이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통찰에 도달함. 가속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이 국소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등가원리로, 훗날 스스로 "생애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 회고한 착상.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다루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

미국과 일본이 일본인 노동자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이른바 신사협정을 마련함. 일본 정부가 미국 본토로 이주하려는 노동자에게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의 일본계 학생 분리교육 조치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타협함. 정식 조약이 아니라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양국이 교환한 일련의 외교 각서와 행정조치로 성립함. 일본인의 미국 이민을 인종적·국적별로 제한하는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기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1907년 3월 15일 서울 대안동 국채보상부인회가 《대한매일신보》에 취지서를 게재하고 전국 여성의 참여를 호소함. 여성도 국가의 혜택을 받는 백성으로서 국채 보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히고, 신분과 관계없이 의연금을 낸 사람을 회원으로 인정함. 이후 각지에서 부인감찬회·패물폐지부인회·탈환회 등 여성 단체가 조직되고 패물과 생활비를 절약한 돈을 기부하면서 운동의 참여 기반이 확대됨.

국채보상운동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김성희·유문상·오영근 등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조직하고 취지서와 회칙을 마련함. 국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서점·약국·《대한매일신보》사·잡지사 등을 의연금을 받는 수전소로 지정함. 서울에 모금·보관 체계가 마련되면서 각 지역과 계층의 국채보상 조직 결성이 확산됨.

국채보상운동